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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기후변화 대응은 예방과 근본 대책으로 풀어야"

전문가 칼럼 류영재 류영재의 ESG 전망대

"기후변화 대응은 예방과 근본 대책으로 풀어야"

등록 2023.07.24 16:49

글로벌 컨설팅사 파트너와의 대화

지난달 싱가포르에 근무하는 글로벌 대형 컨설팅사의 한국인 파트너를 만났다. 그는 시종일관 기후전쟁의 심각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빈번한 쓰나미 등 기상 이변을 직접 경험하면서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는 데 비해, 한국에 와보면 이 문제를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처럼 대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그는 한국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의 기후 문제에 안이한 대응 태도에 대해서는 더욱 안타까워했다.

그의 기시감 때문이었다. 그는 97년 IMF위기 일년여 전부터 한국의 외환위기 발발 가능성에 대해 당시 관련 부처 관료들에게 몇 차례 경고를 보냈으나 무시당했고, 국내 유력신문에도 당시 외채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내용의 원고를 보냈으나 가위질당했다며, 현재 한국의 기후 위기 대응 양상을 보면 그때가 떠오르며 식은땀이 날 정도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국가적 재난이나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그 근본 원인(root causes)을 파고들어 원인 규명 및 재발 방지 대책 등 근원적 대책을 수립하기보다 증상(symptom)에 대한 대증적 처방을 내놓는 경향이 강하다. 예컨대 뼈가 부러지면 접골해야 하는데, 진통제를 처방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왜 근원 처방을 못 내리는 것일까.

이해관계 조정의 복잡성과 첨예한 대립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근본 진단과 처방은 곧 관련 이해당사자나 각종 사익 집단들의 밥그릇을 건드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 집단의 저항과 전방위적 로비가 정책당국의 실행력을 형해화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강한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을 구축하기도 한다.

예컨대 올해 3월 발표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023∼2042년) 정부안을 보면, 산업 부문에서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억3070만t으로 2018년 대비 11.4%로 줄어들었다. 기존 '2018년 대비 14.5% 감축'과 비교할 때 3.1%포인트 완화된 것이다. 산업계의 전방위적 로비가 통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하다.

​다시 위 파트너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그는 국내와 해외 금융기관장들을 만나 보면 커다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해외 금융기관장들 대다수는 금융 산업과 기후 위기 간의 연관성이 매우 높다고 인식하고, 그것을 대비하기 위한 기간별 대책, 중장기 로드맵과 마일스톤 등을 세워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반면 그가 만난 한국의 기관장들은 전혀 달랐다고 했다. 이들은 탄소중립은행연합(NZBA), 기후변화 재무 정보공개 전담협의체(TCFD), 재생에너지100(RE100) 등 각종 기후변화 관련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서명한 것을 침소봉대하는 반면, 구체적 실행 계획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전형적인 ESG워싱에 해당한다고 톤을 높였다.

아울러 그는 또 다른 각도에서 쓴소리를 이어 나갔다. 즉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건방져지면 안 되는데, 최근 한국이 6대 강국론, 한류 등 각종 K-시리즈들이 국제적 찬사를 받으면서 건방져졌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 역시 97년 IMF 외환위기 이전과 닮은꼴이었다. 하지만 국가적으로도 교만해지면 쓴소리는 안 들리고 찬사만 더 크게 들리는 법이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 고위 임원들을 만날 때마다 기후 위기와 관련한 객관적 증거와 과학적 자료들을 제시해도 설득이 어렵다고도 말했다. 흡사 벽에 대고 이야기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어떤 기업인은 매우 언짢아하면서 이렇게 강변했다고 한다.

​"저희는 지금 주어진 여건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생존해야 기후 문제 해결도 있는 것이지요. 정말 피땀 흘리며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미래 어느 시점에 위기가 왔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때는 모두 총 들고 나갑니다. 한국인들 특유의 고난 극복 DNA가 작동하지요. IMF위기때 못 보셨나요? 금모이기 운동 등으로 대표되듯 우리는 그렇게 극복해 온 민족입니다."

​어쩌면 위 기업인의 강변은 한국적 맥락에서 설득력이 있다. 한국은 이제까지 단기 처방과 대증요법에 매우 유능했다. 대형 재난이나 사건이 터지면 빨리빨리 뒷수습에 능했다. 그런 까닭에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그러한 대증적 대응은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일부 완화하는 것이고 현재의 문제를 미래세대에게로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결코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

특히 한국의 탄소 다배출 산업구조의 저탄소 전환은 단기적 벼락치기로 해결될 과제가 결코 아니다. 즉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5년 정권과 무관하게 긴 호흡으로, 한국 산업의 특성도 충분히 배려한 상태에서 단계적으로 실행해 나갈 문제인 것이다.

​기업이든 국가든 '경영'의 우선순위는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 예방이다. 즉 선제 대응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외양간을 신중하게 살펴야 귀중한 소를 지킬 수 있다. 더군다나 기후 위기 문제는 최소한 수십 년의 시계(視界) 하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즉 예방적 선제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다시 IMF외환위기와 같은 국가적 재난은 피해야 한다. 한번은 실수지만, 두 번 반복은 인재(人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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