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ISA 갈아타자"···은행 고객 이탈 우려본격 금리인하 앞두고 위험자산 선호도 높아져ISA는 이미 증권사에 추월···수익률 제고 '과제'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15일부터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가 시행된다. 그동안 퇴직연금 가입자가 다른 금융사로 갈아타려면 기존 계좌의 투자 상품을 모두 처분하고 현금화해야 했다. 손실 여부와 상관없이 상품을 매도해야 하므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실물 이전 제도가 시행되면 시장에서는 퇴직연금 적립금 점유율이 높은 은행권을 중심으로 이탈을 예상한다. 은행은 상품 라인업이 상대적으로 단조롭고 수익률도 낮아서다.
지난해 기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382조원으로, 최근 5년간 연평균 15%씩 급성장하고 있다. 은행의 적립액 점유율은 과반을 넘는 51.8%에 달하고 증권(22.7%), 생명보험(20.5%), 손해보험(3.9%)이 뒤를 잇고 있다.
은행은 점유율이 가장 높지만 수익률은 최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4.87%로, 증권사(7.11%) 대비 2.24%P(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생명보험(4.37%)과 손해보험(4.63%)의 수익률도 은행보다 높았다.
은행의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 특성상 초저위험 상품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증권사는 높은 실적배당 상품과 위험 추구 상품을 구성하고 있어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은행이 주도하는 원리금 보장 퇴직연금 적립금은 333조원으로 전체 적립금의 87.8%를 차지했다. 증권사 중심인 실적 배당형은 전체의 12.8%인 49조1000억원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은행권의 고객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금리인하기에는 예금 등 은행의 안전자산이 위험자산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해진다. 현재 유가증권시장의 유동주식 수 대비 거래 비율은 2020년 이후 최저 수준이지만, 금리인하 이후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전망이다.
실제로 국내은행의 핵심 예금(저원가성 예금)은 하반기 들어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927조원까지 치솟았던 핵심 예금 규모는 6월 들어 917조원으로 낮아졌고, 7월 871조원, 8월엔 885조원을 기록했다.
올 연말부터 샌드박스 형태로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 일임 서비스가 도입되는 것도 은행권에 부담이다. 증권사와 달리 투자일임 라이센스가 없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어서다.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퇴직연금 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콴텍 등 핀테크 업체와의 제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영업에는 한계가 있다.
전체 가입 금액 30조원을 돌파한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역시 은행이 불리한 상황이다. 은행이 취급할 수 없는 투자중개형의 수요는 높아지고 있지만 주력상품인 일임형 가입자는 되레 줄고 있어서다. 정부의 세법 개정 이후 가입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은행의 속내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ISA는 주식, 펀드, 예금 등 여러 업권의 다양한 금융상품을 하나의 계좌에 모아 투자하고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는 계좌형 상품이다. 내년부터는 ISA 일반형 상품의 비과세 한도가 최대 500만원(서민형 최대 1000만원)까지 확대되고 납부 한도도 연간 2000만원(총 1억원)에서 연간 4000만원(총 2억원)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금융투자협회과 집계한 결과 지난 8월 말 기준 ISA 가입 금액은 증권사가 16조3000억원(53.9%), 은행은 14조원(46.1%)을 차지했다. 지난 5월 말부터 은행을 추월한 증권사는 매월 격차를 벌려나가는 모습이다.
이는 은행이 주로 취급하는 일임형 ISA의 규모가 줄고 투자 중개형이 급성장한 결과다. 지난 2021년 2월 출시된 투자 중개형이 15조9400억원 늘어날 동안 일임형은 247억원 줄었다. 은행 예금 중심의 저수익 금융상품에서 자본시장을 통한 고수익 투자상품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가 심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정부의 ISA 지원 강화에 이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까지 현실화되면 은행에서 증권사로 자금이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이 금융상품의 경쟁력을 수익성을 중심으로 얼마나 강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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