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투금과 한농 등 성공 사례 극소수에 불과사모펀드 주도 경영권 탈취 선례 남길까 우려↑"차등의결권, 포이즌 필 등 제도적 보완 시급"
15일 재계에 따르면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전날까지 공개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5.34%를 추가로 획득했다. 당초 최소 매입 물량으로 설정했던 6.98%엔 못 미치지만 과반에 가까운 의결권을 확보하면서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다른 기업은 상당히 불편해하는 눈치다. 영풍·MBK 연합은 자신들이 시장에 이정표를 남겼다고 포장했지만, 본질은 자본을 활용한 경영권 탈취에 불과하다는 인식에서다. 무엇보다 사모펀드의 공격으로 기업 경영권을 잃는 전례가 생기면 훗날 다른 곳도 자연스럽게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는 데 경계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적대적 M&A가 관찰된 것은 자본시장육성법이 사라진 1994년부터다. 대주주가 아닌 사람이 기업 지분을 10% 이상 인수하려면 기존 대주주에게 매입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이 폐지되면서 일종의 보호 장치가 사라졌고 지분을 매집해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다만 고려아연의 사례처럼 '도전자' 쪽이 목표 달성에 근접한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1994년 한솔제지가 공개매수로 동해종합금융(옛 동해투자금융)의 지분을 25%로 끌어올려 금융업에 진출하고, 비슷한 시기 동부그룹이 한농(현 LG그룹 계열사 팜한농)을 인수한 것 정도다.
실패한 케이스가 더 많았다. 1997년의 '미도파 사태'가 대표적이다. 1997년 외국인투자자가 주식을 대거 사들이면서 촉발된 이 사태는 신동방그룹 등이 가세하면서 한층 가열됐다. 이들 세력의 지분이 미도파 대주주 대농그룹을 추월하면서 회사가 넘어갈 뻔 했으나, 전경련을 주축으로 재계가 방어에 나서면서 그 시도는 불발에 그친 바 있다.
현대가(家)의 친족간 분쟁도 꾸준히 회자되는 사례 중 하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취임 직후인 2003년 11월 시숙부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를 놓고 분쟁을 벌였다. 당시 KCC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6.2%를 사들임으로써 인수 의사를 공식화하고 이듬해 2월엔 8%를 추가로 공개매수했으나, 증권선물위원회의 처분명령 등으로 인해 현정은 회장 승리로 일단락됐다.
SK그룹도 2003년 외국계 사모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의 맹공으로 홍역을 치렀다. 이 때 소버린은 자회사 크레스트증권을 앞세워 SK 주식회사 지분을 14.99%까지 높인 뒤 경영진을 위협했는데, SK는 오너일가의 공동 대응과 팬택·하나은행 등 백기사의 지원으로 회사를 지켜냈다.
영풍·MBK 쪽으로 기울어가는 고려아연 분쟁 국면에 재계가 유독 긴장을 놓지 못하는 배경이다.
문제는 결과적으로 애꿎은 기업만 모든 부담을 짊어진다는 데 있다. 방어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만큼 재정적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고려아연만 해도 경영권 수성을 위해 자사주 대항 공개매수에 착수하면서 자기자금 5000억원을 쓰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이렇다 보니 사회 전반에선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차등의결권이나 신주인수선택권 이른바 '포이즌 필'의 도입을 대안으로 지목한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자나 경영자 지분 등 특정 주식에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적대적 M&A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또 '포이즌 필'은 기존 지배주주에게 시가보다 싸게 주식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물론 회사의 가치와 주주의 이익을 유지하고자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이밖에 미국 정치권이 일본제철 US스틸 인수 시도를 저지하고 중국 기업의 리튬 광산 인수를 막은 호주 외국투자심의위원회(FIRB) 제도처럼 경우에 따라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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