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반도체, 'SK하이닉스 납품' 한화세미텍 집중 견제 곽동신 "기술력 차이 상당···유야무야 끝날 것" 직격탄 일각선 "대외 불확실성 속 선의의 경쟁 필요" 비판도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의 공방이 가열되는 것을 놓고 시장에선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다. 한화세미텍의 SK하이닉스 납품 계약을 기점으로 한미반도체 측이 자신들의 기술력을 부각시키며 날을 세우자 일각에선 피로감을 호소하는 한편, 다소 지나치다는 인식이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랜 업력에서 비롯된 기술력과 노하우를 인정하지만, 한미반도체 측이 필요 이상으로 반응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면서 "SK하이닉스도 신중한 검토 끝에 한화세미텍 장비 도입을 결정했을 텐데, 양사의 장비가 모두 공정에 투입되는 마당에 기술 격차를 따지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한미반도체 측 행보에 대한 발언이다. 이 회사가 최근 들어 곽동신 회장의 책임경영과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약속했는데, 그 과정에서 실명으로 경쟁사를 공개 저격한 데서 비롯됐다.
실제 곽 회장은 대외에 공유한 메시지에서 "우리는 싱가포르 ASMPT, 한국 한화세미텍과 상당한 기술력 차이가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만 그 뒤에 "SK하이닉스로부터 수주받은 한화세미텍도 흐지부지하게 소량의 수주만 받아가는 형국이 될 것"이라는 말을 붙여 눈총을 받은 바 있다.
한화세미텍을 향한 한미반도체의 반감은 1분기 잠정 실적 코멘트에서도 드러났다. 영업이익(686억원)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9% 성장한 보기 드문 성적표를 내놓으면서도 한화세미텍과의 기술 유출 분쟁을 되짚은 게 대표적 장면이다. 특히 한미반도체 측은 "한화세미텍이 패소할 경우 엔드 고객사인 엔비디아와 TSMC까지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작심 발언으로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그만큼 한화세미텍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작년부터 SK하이닉스로부터 'TC(열압착)본더' 퀄테스트(품질 검증)를 받아온 이들은 지난달 두 차례 총 420억원 규모 납품 계약을 체결하며 수년에 걸친 연구개발 노력의 결실을 맺었다. 이를 바탕으로 독점 구도를 깼다. 그간 한미반도체가 SK하이닉스에 HBM용 TC본더를 공급해왔는데, 틈새를 공략함으로써 경쟁 체제로 전환한 셈이다. 'TC본더'는 HBM 생산을 위한 필수 장비다. HBM에 쓰이는 D램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칩을 하나씩 열로 압착해 붙이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상황은 한미반도체에 악재로 작용했다. 주가가 떨어지는 등 시장에서 부정적인 신호가 속속 감지됐다. 현재 이 회사의 주가는 주당 6만200원(7일 종가)인데, 반도체 업황 회복에 힘입어 18만원을 웃돌던 작년 6월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여기엔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와 같은 불확실성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겠지만, 한화세미텍의 거센 추격도 한 몫 했다는 인식이 짙다. 이렇다보니 한미반도체도 평소보다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선 그 방식에 대한 의구심도 존재한다. 한미반도체 측이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 낼수록 경쟁 구도가 더욱 선명해지고 한화세미텍이 시장에서 인정받는 듯한 장면까지 연출되고 있어서다.
일례로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과의 분쟁을 언급하며 그 피해가 엔비디아와 TSMC로 미칠 가능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이는 곧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에서 엔비디아로 이어지는 'HBM 밸류체인'에 합류했다는 의미가 된다. 반도체 업계 특성상 공급사로서는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더라도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선 함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름 아닌 경쟁사가 이를 확인해준 셈이다. 결국 한화세미텍을 띄워주는 쪽은 한미반도체라는 얘기다.
외부에선 기술 유출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본격화하면서 양측의 첨예한 갈등 관계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한미반도체는 법무법인 세종을, 한화세미텍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법원에 답변서를 제출하는 등 앞으로의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사례처럼 경영권을 놓고 대치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서로 격려하며 선의의 경쟁을 이어가는 게 일반적"이라며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에 따른 대외 리스크로 공동의 대응이 요구되는 지금 우리 기업 사이의 갈등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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