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류승범이 ‘나의 절친 악당들’을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왔단다. 한국 입국 당시 조그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도 연예인인데 말이다. 그는 연예인이란 말에 꽤 거부감이 있는 듯했다. 그냥 배우란 직업을 가진 일반인으로 불리고 싶단다. 언론시사회 당시 입은 후줄근한 옷차림새나, 이날 입고 나온 옷 역시 동네 산책 나온 옆집 아저씨 콘셉트였다. 한 참 웃었고, 류승범은 ‘아직도 버릴게 태산이다’고 걱정이다.
“이미 수 없이 말했는데 한국에서 떠날 때 딱 트렁크 두 개 들고 비행기에 올랐어요. 이번에 잠시 들어올 때도 가방 하나 들고 왔는데, 그것도 짐이에요. 하하하. 그래도 옷은 몇 벌 있어야 하니깐 가져는 왔는데. 버리니깐 그제서야 자유가 보이는 거에요. 정말 편해요. 몸이 가벼워지니 에너지가 생기고, 에너지가 생기니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놓치고 산 것들이 보이는 거죠. 정말 잘했단 생각뿐이에요.”
그는 이날 외모부터 어떤 도인의 기질을 담고 있었다. 득도의 경험을 한 것이냐고 묻자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실천으로 옮긴 것 같았다. 뒤에서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것이지만 파리의 생활이 꽤 여유롭고 즐거워보였다. 한국에서의 연예인 류승범은 일상의 자유가 없었다. 하지만 파리의 류승범은 그저 일반인이다. 그런 생활을 즐기는 와중에 이번 ‘나의 절친 악당들’을 만났다. 극중 지누는 지금의 류승범을 빼다 박았다.
“영화는 분명 허구의 세상이잖아요. 거짓말이죠. 그런데 이상하게 시나리오를 읽는데 그 힘들이 느껴졌어요. 살아 있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죠. 대사 한 줄 인물 속 혹은 단어 하나에서조차 의미를 찾게 되더라구요. 그때부턴 다르게 보였죠. 눈앞에 살아난 인물들과 대화가 되니까요. 상상이 됐어요. 이게 영화로 만들어 지면 어떨까.”
무엇보다 류승범을 끌어당긴 것은 감독 ‘임상수’란 이름 세 글자였다. 류승범 본인도 충무로에서 특이한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독특함을 자랑한다. 임 감독 역시 못지않은 자기 색이 뚜렷한 감독이다. 이런 감독과 배우가 만나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까. 대중들도 궁금해 했고, 류승범 본인도 상상이 되지 않는 조합이었단다.
“임상수 감독님과는 꼭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배우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임 감독님과 작업 한 번 해보고 싶은 건 당연할 거에요. 괜한 말이 아니에요. 자신만의 색이 저렇게 확실하신 분은 배우들을 어떻게 다룰까. 궁금하죠. 직접 격어본 임상수 감독님? 우선 생각이 정말 많으신 분이에요. 고민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깊게 하시고 꺼내세요. 그리고 굉장히 쎄신 분이라고 주변에서 알고 있는데 절대 아니에요. 정말 사랑스러우세요. 하하하. 감히 말씀드리지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꼭 함께 하고 싶었던 임상수 감독이지만 첫 작업이니 만큼 낯선 경험도 분명 많았단다. 우선 임 감독의 촬영 현장은 콘티 자체가 없다고. 배우들은 필연적으로 촬영 전 예비 설계도에 해당하는 콘티를 보고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연기하고 감독의 요구에 그것을 구체화 시킨다. 하지만 이번 현장에선 그것이 없었기에 천하의 류승범도 당황했다고.
“되게 묘했어요. 처음에는 ‘이게 뭐지’란 생각도 들었고, ‘내가 잘하고 있나’란 의구심도 자꾸 들었죠. 그런데 그게 맞더라구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지누’에게 이입이 되면서 생각을 자꾸하게 되요. ‘이럴때 지누는 어떻게 할까’ 등등. 그러니 더 좋은 화면이 나오고 더 좋은 그림이 그려지게 되더라구요. 배우들에게 어떤 공간을 남겨주시니 저도 작업 지루하지 않았죠. 전반적으로 상당히 유니크한 느낌이 살아났죠.”
임상수 감독도 마찬가지였고, 류승범 본인도 이번 영화에서 상대역인 고준희에 대한 칭찬이 많았다. 류승범이야 이미 대한민국 감독들이 탐내는 ‘선수급’ 배우 아닌가. 그런 류승범과 함께하는 고준희는 ‘긴장하고 또 긴장했다’는 말로 이번 작품에 임하는 자세를 전하기도 했다. 류승범은 고준희 역시 ‘사랑스러운 배우’라고 호감을 드러냈다. 물론 동료로서의 호감이다.
“모든 작품이 그렇듯 상대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한 건 당연하죠.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고준희란 배우의 진가를 저도 봤고, 감독님도 보셨고, 특히 관객분들도 보실 기회가 될 거에요. 같이 있어도 에너지를 받을 수 있고, 눈빛만 주고 받아도 연기가 되는 상대가 있는데 그게 고준희 같아요. 함께 하면서 저도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시각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꼭 다시 만나고 싶은 배우에요. 자기를 비울 줄 아는 모습이 정말 끝내줬어요.”
말을 하면 할수록 류승범은 이미 다 비워버린 듯 했다. 자신 안에 남은 모든 게 아무것도 없는 듯 텅빈 느낌이 강했다. 공허함이 아니었다. 텅 비워냈기에 꽉 채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느낌이었다. 일반적으로 가질 수 없는 정말 독특하면서도 어려운 경험이 지금의 류승범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나의 절친 악당들’ 속 지누의 모습이 어쩌면 연기가 아닌 진짜 류승범의 모습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일이라 밝히기는 좀 그래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맞아요. 지금의 변화가 시작된 계기(웃음). 그런데 전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한국 떠난 게 3년이고, 처음 6개월은 독일 베를린, 프랑스에서 1년 6개월 지내다 뉴욕으로 한 번 갔는데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어요. 글쎄요. 뭐랄까. 아직 전 여행 중이에요. 사는 게 여행이잖아요. 전 잠시 프랑스란 곳에서 쉼표를 찍고 있는 거고. 아직도 비우고 있어요. 앞날은 모르는 거잖아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의 절친 악당들’ 속 지누와 나미가 그러는 것처럼(웃음)”
P.S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또 버리는 중이란다. 가장 잘 버렸다고 생각한 것 한 가지를 꼽아 달란 얘기에 주저 없이 ‘집’이라고 답했다. 집은 돌아올 곳이고, 그곳이 남아 있다면 버리지 못할 것 같다고. 며칠 뒤 프랑스로 다시 떠난다는 류승범. “돈 벌었으니 가서 또 쓰면서 여행을 해봐야죠”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자유가 느껴진다. 그는 지금도 버리고 있는 중이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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