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KDI·IMF 모두 성장률 전망 상향수출·설비투자 증가., 소비도 반짝 상승 성장 고용으로 연결안돼···대내외 리스크 산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4%에서 2.6% 올렸다. 한국은행이 지난 주 내놓은 수치와 같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2.6%에서 2.7%로 올려 잡았다. 주요 기관들이 잇따라 향후 경기에 대한 낙관적 시각을 내비치자 정부의 경기 인식이 낙관론으로 확연히 돌아선 모습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확대간부회의에서 “한국은행이 지난주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는 등 경기 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가 점차 공감대를 얻고 있다”며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4월 최근 경제 동향(그린북) 자료에서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해 “수출이 5개월 연속 증가함에 따라 생산·투자의 개선 흐름이 이어지고, 그간 부진했던 소비도 반등하는 등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경기회복의 기대감을 드러냈다.
◇지표상 개선 효과
하지만 잇따른 경제 지표의 개선과 성장률 전망치 상향에도 여전히 경제 회복을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곳곳에서 불균형한 모습이 보인다.
수출 호조는 반도체, 정보기술(IT) 등 일부 산업에만 국한돼있다. 반도체 등 특정 업종과 기저효과를 제외하면 사실상 수출 증가 폭은 미비하다. 1분기 업종별 증감률을 보면 석유제품(67.7%) 반도체(44.7%) 석유화학(38.3%) 등은 1년 전보다 수출 규모가 증가했지만, 선박(-11.3%) 가전(-15.9%) 무선통신기기(-21.9%) 등은 부진했다. 여기에 지난해 1분기 수출 성적이 저조했던 것을 고려하면 우리 수출이 회복세를 보인다는 말이 무색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 수출은 반도체와 석유화학 부문은 괜찮지만, 전반적인 확산되는 모습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과거에도 반도체 경기가 좋을 때 경제성장률 수치가 괜찮았다. 경기 회복세라기보다 지표상 개선 효과”라고 주장했다.
설비투자가 증가한 것도 낸드플래시나 오엘이디(OLED)에 대한 세계 수요가 늘어나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일부 대기업들이 투자를 대폭 늘린 것이 이유다. 또 전산업생산은 3달 연속 증가세를 보였지만 반도체 생산 조정 등으로 정작 2월에는 0.4% 줄어들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수출 증가가 내수에 파급효과를 미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아직은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 설비투자가 보다 확실하게 늘어나고 고용 상황이 개선되는 조짐이 있어야 진짜 경기 회복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비는 4개월간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다 반짝 상승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회복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57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한 소비자물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징후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경기 회복세를 판단하는데 의미 있는 지표다. 그러나 소비가 늘어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이 아니므로 경기회복의 선행지표로 보기 어렵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가 회복된 것으로 나타난 건 지난 몇 개월 동안 마이너스 행진한 것에 대한 기저효과”라며 “주거불안, 일자리불안, 노후불안 등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경기 회복을 논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고용 상황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제조업 취업자의 감소세는 계속되고 자영업자만 늘어나고 있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탓이다. 전체 실업률은 4.2%로 전월보다 좋아졌지만,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청년실업률 역시 여전히 10%대를 유지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국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17년 상반기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한 200개 기업 중 27곳(13.5%)은 채용 규모를 지난해보다 줄이기로 했다. 신규 채용이 없는 곳도 18곳(9.0%)이나 돼 5곳 중 1곳 이상(22.5%)은 채용을 줄이거나 없애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높아진 취업 문턱에 구직을 포기하는 청년층이 대거 늘어나는 사회현상이 일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우수한 인재들이 비경제활동인구로 포함돼 단기적으로 생산과 소비에서 큰 규모의 경제적 기회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인적자원 배분의 효율이 떨어지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경제의 성장잠재력까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대내외 리스크 산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이 대내외로 산재해 있다. 수출은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따라 언제든지 꺾일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한국은 30개국으로부터 총 187건의 수입규제를 받고 있거나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이다. 형태별로는 반덤핑 조사·규제가 139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세이프가드 41건, 반덤핑·상계관세 7건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수출에 규제가 들어오고 있다.
아울러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추가 금리 인상과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도 변수다. 미국이 올해 추가로 두 차례 더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만약 미국금리가 우리 기준금리보다 높아지면 우리나라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갈 우려가 있다. 이번 환율조작국 문제는 아무 일 없이 지나갔지만 오는 10월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우리도 함께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우리만 잘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정규철 연구위원이 발표한 ‘미국과 중국 간 통상분쟁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 통상분쟁으로 양국 간 무역이 10% 감소하면 한국 GDP(국내총생산)가 0.35% 준다는 분석이 나왔다.
또한 대우조선해양 채무 재조정, FTA 재협상,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 가계부채, 유럽발 정치 리스크 등 언제든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어 쉽게 경제회복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뉴스웨이 주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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