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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백운동 원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15호 지정

‘강진백운동 원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15호 지정

등록 2019.03.10 09:26

노상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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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경치 정원에 담아...전통 원림의 백미문화재청, 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 인정

강진백운동 원림 (사진제공=강진군)강진백운동 원림 (사진제공=강진군)

강진군이 성전면 월출산 아래에 위치한 ‘강진 백운동 원림(康津 白雲洞 園林)’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최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로 지정고시 됐다.

‘강진 백운동 원림’은 월출산 옥판봉의 남쪽 경사지 아래쪽에 위치하며, 백운동 원림의 본가인 백연당(白蓮堂)에서 북쪽으로 11㎞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고려 시대에 백운암이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계곡 옆에 ‘백운동(白雲洞)’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남아있어 ’백운동‘이라 불리고 있다.

백운동 원림의 내정(內庭)에는 시냇물을 끌어 마당을 돌아나가는 ‘유상곡수’의 유구가 남아 있고, 화계(花階)에는 선비의 덕목을 담은 소나무, 대나무, 연, 매화, 국화, 난초가 자라는 등 조선 최고의 별서(別墅) 원림 중 하나다.

이 원림을 조영한 사람은 조선시대 이담로(李聃老, 1627~1701)로 호는 백운동은(白雲洞隱)이다. 그는 손자 이언길에게 유언으로 ‘평천장(平泉莊)’의 경계를 남겨 후손들에게 전함으로써 이 원림이 지금까지 잘 보존됐다.

별장으로 사용하던 백운동 원림은 이후 증손자 이의권(1704~1759)이 가족과 함께 살며 주거형 별서로 변모하였고, 이덕휘(1759~1828)와 이시헌(1803~1860) 등 여러 후손들의 손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강진 백운동 원림’은 후손들과 명사들이 남긴 문학작품의 무대로도 자주 등장한다. 다산 정약용은 백운동에 묵으며, 그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2곳의 아름다운 경승을 칭송하는 시를 남겼다. ‘백운첩’에 담긴 이 그림과 시는 지금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다산의 제자이기도 한 이시헌은 선대의 문집, 행록과 필묵을 ‘백운세수첩’으로 묶었으며, 조선후기 문인 김창흡, 김창집, 신명규, 임영 등이 남긴 다양한 백운동 시문들과 함께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또 이곳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문화를 교류하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다산 정약용, 초의선사, 이시헌 등이 차를 만들고 전해주며 즐겨온 기록이 있는 등 우리나라 차 문화의 산실로 가치가 더하고 있다.

이승옥 군수는 “백운동 원림을 국가 명승으로 지정하기 위해 그 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고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어서 감사드린다”며 “관광의 보배인 백운동 원림을 많은 관광객들이 감상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 줄 수 있도록 잘 보존하고 가꾸어 나가자”고 덧붙였다.

한편 이담로가 손자 이언길에게 유언으로 남긴 평천장(平泉莊)이란 당나라 이덕유의 ‘평천산거계자손기’에서 “후대에 이 평천을 파는 자는 내 자손이 아니며, 나무 한그루와 돌 하나라도 남에게 주는 자는 훌륭한 자제가 아니다”라고 말한 데에서 유래한다.

뉴스웨이 노상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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