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탁금 1천만 적용·사전교육 의무화 적용투자자 내쫓는 격···시장 고사 우려 확대소액·간편 투자 큰 원칙 스스로 어긴 꼴“해외파생, 가격제한폭 없어 더 위험” 경고
물론 금융당국이 ETP라는 상품에 규제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다소 필요성이 인정되는 부분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저평가된 우량주를 사들이겠다는 동학개미의 초심은 이미 변질대로 변질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마이너스’ 국제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고위험 투자상품(국내외 원유 미니 선물, 원유 ETN·ETF)에 쉽게 접근해 안 그래도 금융당국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개인투자자들의 원유 관련 파생상품 투자는 ‘투기 광풍’이라는 표현마저 나왔었고, 실제 원유 관련 파생상품 수요가 폭증하면서 유통물량이 씨가 말랐고, 유가지표가격보다 ETN 가격이 비싸지게 되면서 나타나는 ‘괴리율’은 연일 폭증하기까지 했다.
원유 ETN 상품의 괴리율이 크게 확대되고 시장 쏠림이 심해지는 문제점이 드러나자, 금융당국은 개인 투자자들의 진입 장벽을 대폭 높이는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개인 투자자들은 오는 9월부터는 레버리지 ETF·ETN에 대해 고객 예탁금 1000만원과 사전 교육을 받아야만 해당 거래를 할 수 있다.
다만, 당국의 고강도 대책이 자칫 시장을 위축시킬까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ETF·ETN은 소액으로 간편하게 간접 투자하라고 만든 상품인데 선물처럼 ‘브레이크’를 걸어 또다시 파생상품시장을 고사시키는 과거의 우를 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보단 국내 증시를 떠받들던 동학개미들이 국내에서 ‘우르르’ 짐 싸, ‘규제 밖’의 더 위험한 해외파생상품으로 대거 몰릴 것이라는 걱정이 더 크다.
◇미국 ETP 상품만 2천개 넘어, 국내 5~6배 수준 = 안 그래도 동학개미들은 지난 3월부터 이미 해외 파생상품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투자자의 해외파생상품 거래량은 4206만계약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6.9% 늘었다. 이는 전 분기보다는 82.8% 증가한 것이다. 거래량을 월별로 봐도 작년 12월 791만계약에서 올해 1월 986만계약, 2월 1139만계약, 3월 2081만계약 등 급증하는 추세를 보고 있다.
이들 투자자 대부분은 역시 ‘동학개미군단’이었다. 개인투자자 거래량이 2866만계약으로 전체의 68.1%에 달했고, 증권사 18.4%(774만계약), 은행, 선물회사, 자산운용사 등은 1% 수준이었다.
동학개미군단이 해외 증시에 눈을 돌린 이유는 국제 유가에 있다. 국제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ETF를 비롯한 각종 원유 투자상품을 대거 사들이는 가운데, 미국 현지에서도 이미 ‘마구잡이식’ 유가 ETF 투자해 걱정스런 눈초리로 바라봤다.
해외 ETP시장은 국내 투자자들엔 더 다양한 선택지다. 이날 19일 기준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상장된 ETF 종목수는 453개, 발행된 ETN 수는 194개다. 그러나 해외(미국, 유럽, 이머징 등) ETP 상품의 경우는 이미 7천개가 넘는다. 이 중 미국 ETP상품만 해도 2273개인데, 이마저도 작년 2월 기준치다.
단순히 종목 수뿐만 아니라 상품 또한 다양하다. 미국 ETF 상품을 예를 들자면, VIX 지수에 투자하는 상품이 있으며 이 외에도 곡물, 금속, 에너지 등 시장에 거래되는 모든 형태의 지수, 상품들이 ETP화 돼 있다.
무엇보다 진입문턱이 낮은 점 때문에 동학개미들이 해외로 유입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 국내의 경우 9월부터 레버리지 ETP 한해 예탁금 1000만원, 사전교육이 요구되지만, 해외서는 이러한 규제가 없다.
다만, 가격제한폭이 없어 더 위험한 투자에 몰릴 우려가 커졌다는 말이 나온다. 현재 국내 ETF와 ETN의 경우 가격제한폭이 ±30%로 규정돼 있다. 레버리지의 경우 이보다 두배인 ±60%를 적용받는다. 그러나 해외의 경우 이러한 제동 장치가 없어 투자주의가 더 요구되는 상황이다.
◇유일하게 ETP에 증거금 적용, ‘금융후진국’으로 가나 = 일각에서는 전 세계 증시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ETP 상품에 증거금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러다가 자칫 ‘금융후진국’으로 가는 것 아니냐며 비난하고 있다.
현재 개인 투자자의 투자에 대해 선물·옵션 거래는 1000만원, 주식워런트증권(ELW)은 1500만원의 기본예탁금이 있지만 레버리지 ETP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당국이 개인투자자의 고위험 상품시장 진입장벽을 높이기 위해 기초자산 변동치의 2배 이익이나 손실이 예상되는 레버리지 ETF·ETN을 매수하려는 투자자에게 기본예탁금 1000만원을 적용해 차입투자를 제한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것이 코로나19 영향으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레버리지 상품에 대한 과도한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반등을 기대하는 투자자의 원유 관련 상품 거래가 크게 늘었다.
전체 ETP 시장에서도 레버리지 상품의 거래량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지난 1월 38.1%였던 전체 ETF 중 레버리지 ETF의 거래비중은 3월부터 60%를 상회하고 있고, 레버리지 ETN의 비중 역시 1월 78.3%에서 지난달 96.2%까지 상승했다. 높은 투자수익을 노리는 개인 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예탁금을 1000만원으로 제시한 것과 관련, 옵션 상품과 달리 투자금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도 아닌데 증거금 성격으로 레버리지상품에 선물·옵션과 같은 예탁금을 책정한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러다가 자칫 ETP 시장의 성장세를 꺾을 수도 있다는 반응이다. 잘 나가던 ELW 시장이 예탁금 도입으로 크게 위축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ELW는 특정 종목이나 지수를 정해진 시점에 특정 가격에 사고팔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증권인데, 2005년 국내에 도입된 이후 국내 ELW 시장은 거래 규모가 한때 홍콩에 이어 세계 2위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지난 2010년 금융당국이 초단타 투자(스캘퍼) 문제를 해결한다며 내놓은 예탁금 규제가 오히려 시장을 위축시킨 장본인이 됐다. 당시 ELW에 몰렸던 45조원의 자금은 2년만에 95% 감소한 2억원으로 주저앉는 현상이 발생된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기본 예탁금 도입이 고위험의 레버리지 상품에만 국한된 점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번 규제가 레버리지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만큼, ETP 시장이 건전화하면 오히려 균형 있고 안정적인 자산관리 시장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뉴스웨이 김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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