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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한강 동호대교···오랜업력에도 주인 5번 바뀐 기구한 운명

부동산 건설사 랜드마크로 보는 건설社 흥망성쇠|남광토건

한강 동호대교···오랜업력에도 주인 5번 바뀐 기구한 운명

등록 2023.02.06 07:00

수정 2023.02.06 07:20

김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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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부산서 남광토건사로 설립···한때 쌍용건설 자회사로목동 신시가지, 지하철 5·6호선, 영동고속도로 등 역사 깊어도급순위 7위서 몰락···몇차례 재매각에 결국 세운건설이 인수DL·대우·포스코 등 대형건설 출신 임원 영입해 주택사업 강화

한강 동호대교···오랜업력에도 주인 5번 바뀐 기구한 운명 기사의 사진

동호대교는 '동호(東湖, 도성의 동쪽에 있는 물가)'는 옥수동 한강변 지역의 옛 지명이다.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 옥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다리인 만큼 착공 당시 '금호대교'라고 했으나 1984년 '동호대표'로 변경됐다. 한강의 15번째 다리이며 한남대교와 성수대교 사이에 있는 복합교량으로, 3호선의 마지막 지상구간이기도 한다.

수심이 가장 깊은 구간으로도 알려져 있다. 다른 구간들은 깊어봐야 15m 수준이고 마포대교는 9m에 불과한데 동호대교 구간만 특이하게 수심이 23m에 달한다. 워낙 수심이 깊은 곳이라 동호대교 근처의 한강공원 철망은 다른 곳에 비해 2m씩 더 높게 설치돼 있다.

동호대교는 1980년 6월 5일에 국내 중견건설사 남광토건이 민자사업으로 착공한 다리다. 이 외에도 남산3호터널, 목동신시가지아파트 11단지, 한국거래소 서울사옥 별관. 서울지하철 5~6, 9호선, 부산지하철 2~3호선, 창경궁 복원 등 주요 이력을 지니고 있다.

한 때 시공평가능력 7위까지 오르며 대형 건설사로 자리매김했으나 애석하게도 그 이후 몇 차례나 재매각되는 불운을 피한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닌 건설사다. 중동 석유파동과 주택시장 침체 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쌍용그룹, 대한전선그룹 등으로 주인이 바뀌는 수모를 겪었다.

남광토건은 지난 1947년 배정일 창업주가 부산에서 '남광토건사'로 설립됐다. 이후 1954년 1966년 전기공사업, 1968년 도로공사업 면허를 각각 따고 1974년 필리핀에 첫 해외지사를 세웠다. 1975년에는 요르단에 진출해 중동에서 건설사업을 시작했고 이듬해 한국거래소에 상장했다.

이후 1977년에는 국내 도급순위 7위로 명성을 떨친 저력이 있다. 전성기를 달리는 듯 했으나 이후 다른 건설사로 몇 차례나 재매각되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1979년 제2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당시 중동붐이 꺼진 영향이 가장 컸다. 이 때문에 중동으로 진출했던 남광토건의 경영마저 악화됐다.

불행 중 다행인지 1984년부터 쌍용종합건설의 위탁경영을 받다가 1986년 쌍용그룹에 편입되면서 주요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쌍용건설과 함께 '쌍용아파트' 브랜드를 공유하며 여러 아파트단지를 시공했다. 실제 지난 1990년대부터 2000년 초반에 지어진 쌍용아파트들을 보면 의외로 남광토건이 시공한 단지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삼성동 쌍용 플래티넘, 논현 쌍용아파트, 오금 쌍용스윗닷홈, 성수 쌍용아파트, 부산 서면 쌍용스윗닷홈 스카이, 광주 치평동 금호쌍용아파트 등이 있다.

아울러 당시 남광토건이 참여했던 유명 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있었는데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시 강서구 신정동·양천구 목동에서 진행됐던 '목동 신시가지 건설사업'이었다. 1단지(삼성물산), 2단지(울트라건설), 3단지(대우건설), 4단지(롯데건설), 5단지(삼환), 6단지(현대건설), 7단지(금호건설 등), 8단지(동부건설), 9단지(극동건설) 등 당시 왠만한 대형건설사들이 참여하는 주택사업이었는데 남광토건은 진흥기업과 11단지를 시공했다. 이후 1996년에는 국내 최초로 서울지하철 5호선 한강 하저터널 등을 준공하는 등 도로 공사 하수처리 시설 공사 등 토목공사에도 주력했다.

쌍용건설과 같이 재성장하는 듯 했으나, 1997년 또 한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외환위기로 모기업이었던 쌍용그룹이 어려워지면서 1999년 워크아웃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2002년 가까스로 워크아웃에 졸업한 남광토건은 다음해인 2003년 최대주주였던 쌍용건설과 하나은행이 남광토건 주식 보유지분전량을 골든에셋플래닝 컨소시엄에 매각하게 된다. 당시 매각으로 남광토건은 쌍용그룹에서 완전 분리됐다. 두 번째 주인을 맞이하게 된 남광토건은 그럼에도 2007년 개성공단 철공공장 착공을 시초로 대북 건설사업에 적극적으로 손을 벌리는 주요 실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다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지난 2008년 또 다시 새 주인을 맞이해야하는 운명에 놓이게 된 것. 당시 주인공은 대한전선그룹이었다. 대한전선은 2008년 4월 남광토건 지분을 사들여 회사 1대주주로 올랐으나, 2대 주주 차종철 남광토건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다 같은해 9월 회사를 공동경영하기로 합의했지만, 그 이후에도 회사 경영을 둘러싼 대주주간 잡음이 지속됐다. 결국엔 지난 2010년 2대 주주 측이 지분 18%를 사들여 남광토건을 단독 경영하게 된다.

이도 잠시 지난 2013년 대한전선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인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남광토건의 주인은 또 한 차례 바뀌게 된다. 이번만 해도 4번째 주인이 바뀐 셈이다. 계속되는 인수·합병(M&A)에 실패한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는 주인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출자전환으로 부채부담을 줄고 수익성을 개선시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가까스로 주인을 찾았는데 지난 2016년 최종적으로 세운건설에 인수됐다.

세운건설은 건설업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중소 건설사였다. 남광토건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임에도 2012년 금광기업에 인수한데 이어 극동건설 등 굵지의 건설사까지 연달아 인수하는 등 범상치 않은 영토확장에 나섰다. 즉 법정관리에 처한 건설사들을 싼 값에 인수하며 사세 확장에 나선 것이다. 세운건설은 기명철(개명 전 봉명철) 회장이 지난 1995년 전남 화순에서 설립해 현재도 화순에 본사를 두고 있다. 당시 직원은 40여명 안팎에 불과했다. 봉 회장은 2012년 금광기업을 인수한 후 금광기업 대표로 자리를 옮기고 세운건설은 비등기 임원으로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해왔다. 기명철 회장은 세운건설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으며 금광기업과 남광토건, 극동건설의 지분 일부를 들고 있기도 하다.

세운건설이 남광토건을 인수할 당시만 해도 회사 실적은 매우 부진했다. 2년간(2015~2016년) 누적 영업손실이 602억원이었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세운건설은 지난 2017년 8월 DL이앤씨와 고려개발 출신의 임원 10여명을 대거 영입했다. 이들을 영입한 효과로 2017년 흑자전환, 2018년 영업이익 111억원을 기록했고, 부채비율도 2015년 506.6%에서 2018년 203%까지 낮아졌다.

그러나 이들의 협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8년 수주실적 악화로 기명철 회장과 임원진의 의견 대립이 심해지면서 결별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남광토건은 삼성물산 한화건설 쌍용건설 등 더 다양한 건설사 출신 인사를 영입하며 경쟁력을 강화했다. 최근에는 HDC현대산업개발 출신의 임민규 대표를 선임하고 사옥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로 이전하는 등 재도약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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