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과 같은 혁신제품을 앞세워 성장해 온 애플은 2010년대 들어 마이크로소프트, GE 등의 공룡들을 모두 제치고 미국 시총 1위 기업으로 도약했습니다. 애플의 고공행진을 두고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저는 애플이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통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여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자사주 매입‧소각은 애플을 비롯한 미국의 상장사들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수시로 쓰는 카드입니다. 회사가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하면 총 발행주식의 수가 줄어들게 되고, 이는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사실상 현금으로 돌려주는 셈이죠.
상장사의 자본에 자금을 대는 것을 흔히 ‘주식투자’라고 이야기합니다. 투자한 자본으로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느냐가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따라서 자사주를 소각하는 기업일수록 주식시장에서 높은 성장성을 인정받게 되고, 이는 주가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주식 수를 줄여 자기자본을 감소시키면 ROE가 높아지게 되는데요. 실적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높은 이익을 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애플이 지난 10년 동안 무려 4670억달러(560조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매입할 동안 주가는 12배나 치솟았습니다. 애플은 지난해에만 855억달러(102조원) 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였고, 145억달러 규모의 배당도 결정했는데요. 벌어들인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지 않고 주주환원에 적극 사용한 결과 뚜렷한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여전히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매우 인색한 편입니다. 자사주를 매입하더라도 ‘소각’까진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고, 오히려 경영진이 고점에서 주식을 팔아치우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코스피 시총 8위인 카카오만 하더라도 얼마 전 류영준 공동대표 내정자가 900억원 어치를 블록딜하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주가가 바닥을 기고 있는 셀트리온은 어제(10일) 부랴부랴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했지만 자사주 소각 소식까진 들리지 않았습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미국 S&P지수의 ROE는 2004년 15.9%에 그쳤지만 2021년 20.8%까지 올랐습니다. 반면 코스피는 같은 기간 16.1%에서 11.5%로 되레 뒷걸음질쳤는데요. 이처럼 미국 증시의 높은 ROE는 압도적인 주가수익률로 이어졌습니다. 5년 평균 미국 증시의 수익률은 142%에 달하지만 한국은 이에 절반도 못 미치는 60% 수준이죠.
코스피는 지난해 ‘삼천피’ 마감에 실패했고, 새해 들어서도 3000선 밑에서 헤매는 중입니다. 급변하는 대내외 시장환경과 경제흐름을 감안했을 때 올해 증시 전망이 그리 녹록치 않은데요. 애플처럼 우리 상장사들도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을 펼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유력 대선주자들도 ‘코스피 5000 시대’ 등 선언성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구체적인 증시 부양 방안을 내놔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외국인을 비롯한 모든 투자주체들이 한국증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모두 떠나고 말겁니다. 우리 증시의 투자유인 확대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꼭 법제화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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