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음과 바람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여객기는 결국 문이 열린 채로 활주로에 내렸다. 공포에 떨던 승객 중 일부는 착륙 직후 호흡곤란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이번 사고는 한 승객의 '돌발 행동'으로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 승객은 경찰조사에서 "답답해서 빨리 내리고 싶었다"고 잘못을 시인했고, 지난 28일 구속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항공기 비상구 관리의 취약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의 일탈로 책임소재 공방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항공업계가 비상구 안전관리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다.
실제로 비상구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9년 9월 인천공항에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서 비상구 좌석에 앉은 60대 남성이 비상구 안전손잡이를 만져 이륙 4시간 만에 회항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17년 인천공항에서 베트남으로 출발하려던 대한항공 항공기 출입문이 열려 2시간 넘도록 이륙이 지연된 사고도 있었다.
이번 사고로 인해 항공사의 비상구 좌석 판매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현재 국내 항공사들은 2014년 제주항공을 시작으로 모든 항공사가 비상구 좌석을 유료화해 판매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만 15세 미만·한국어나 영어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승객·임산부·노약자 등의 비상구 좌석 탑승을 제한하고, 비상구 승객에게 비상시 탈출을 도와야 한다는 등 안내사항에 대해 동의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비상구 좌석은 일반석보다 다리 간격이 넓어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막중한 책임감 보다는 약간의 웃돈을 얹어 구매 가능한 편안한 좌석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승객 정신 상태나 정신병력 등을 알 수 없는 채 승객 동의만으로 비상구 좌석에 앉을 수 있다는 허점이 여실히 드러나자 아시아나항공은 A-321 계열 항공기 14대의 비상구 좌석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자회사인 에어서울도 사전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진에어와 에어프레미아 등 저비용항공사(LCC)는 판매 정책 변경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종을 운영하는 다른 항공사에서도 비슷한 사고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비상구 좌석 탑승자는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승객의 안전한 이동을 도와야 하는 의무를 지니므로 자리를 비워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얘기다.
해당 좌석의 중요성을 고려해 비상구 좌석 탑승객에 대한 정확한 의무 숙지와 교육·훈련 강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와 함께 객실승무원의 지시에 모든 승객이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있는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최근 폭증하는 여객 수요와 함께 급격히 늘어나는 만큼 국내 항공사들의 사고 소식은 잊을만하면 들려오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묶였던 방역 규제들이 풀리며 해외여행 수요가 폭증하는 지금, '여객이 급격하게 증가해서', '항공인력이 부족해서',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피하기 힘들다' 등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반복되는 안전사고를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반복해서 일어난 사고는 모두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심각한 인명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항공사는 물론 정부와 전문가들은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책을 제시하는 게 시급하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선행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처럼 과연 오늘의 작은 사고가 내일의 안전을 담보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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