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의 수요가 둔화된 시점에서 최근 출시된 저가형 LFP(리튬인산철) 전기차들은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비싸서 못 샀던 전기차를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현재 국내 완성차업체가 판매하는 LFP 전기차는 KG모빌리티 EVX와 기아 레이EV 등 2종입니다. 토레스 EVX는 중형급 차체를 가졌지만 판매가격은 소형급인 코나 일렉트릭과 비슷합니다. 토레스 EVX의 판매가격은 4750만원, 코나 일렉트릭은 4452만원입니다. 보조금을 받으면 중형 전기 SUV를 300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기아 레이EV의 판매가격도 2775만원에 불과합니다. 경형 모델이라 최대 주행거리는 짧은 편이지만, 보조금을 적용한 실구매가는 2000만원 초반입니다. 이는 캐스퍼 1.0 가솔린 터보의 풀옵션 가격(205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죠.
다만 국산 전기차의 LFP 배터리 적용을 둘러싼 시장 안팎의 잡음이 상당합니다. LFP 배터리는 BYD 등 중국 업체들로부터 전량 공급받고 있는데요. 일각에서는 중국산 배터리를 쓰는 건 국부 유출이나 다름없다는 다소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LFP 전기차 관련 기사나 유튜브 영상에서는 "중국산 배터리라 관심없다"는 댓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품질과 안전성만 확보된다면 배터리를 어디에서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미 중국은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조악한 내연기관차를 만들던 중국이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는 위치가 됐다는 겁니다.
전기차 업체 입장에서는 중국이 만든 LFP 배터리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 기존 단점으로 지적됐던 에너지 밀도까지 크게 개선됐으니까요. 실제로 토레스 EVX는 최대주행 거리가 433km에 달합니다. 이는 NCM 배터리를 적용한 아이오닉5(458km‧2WD 롱레인지 기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NCM 대비 화재 위험성이 낮은 것도 LFP 배터리의 장점이죠.
그래서일까요. 기아의 플래그십 전기차인 EV9은 지난달 국내 시장에서 833대 팔리는 데 그쳤습니다. 반면 LFP 배터리로 가격 경쟁력을 높인 레이EV는 1300대나 판매되며 시장 안착에 성공했습니다.
국산 전기차에 중국산 배터리가 쓰이는 게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화살은 적기에 LFP를 양산하지 못한 국내 배터리 업계로 돌아가야 타당합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이제야 LFP 배터리 양산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중국산 배터리 대비 가격 경쟁력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합니다.
속도가 다소 느려지긴 했지만 전동화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2040년이 됐든 2050년이 됐든 각국의 배출가스 규제 강화로 더 이상 내연기관차를 탈 수 없는 때는 분명히 온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LFP 전기차 라인업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져야 합니다.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전기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되고,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국내 전동화 생태계도 더욱 단단해질 겁니다. LFP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 후발주자인 국내 배터리업체들도 LFP 양산 속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LFP 전기차를 구입하면 중국의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입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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