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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성기 정신' 계승자가 필요하다

오피니언 기자수첩

'임성기 정신' 계승자가 필요하다

등록 2024.11.27 07:30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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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r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선대 회장은 한국 제약산업에 중요한 이정표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국내 업계 최초로 '개량신약'이란 화두를 제시하고 글로벌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단번에 R&D 중심 신약 개발 회사를 탄생시켰다. 한미약품이 2015년 한 해에 체결한 기술이전 규모만 8조원대에 달한다.

국내 제약업계에 바이오 붐이 인 것도, 수익모델이 합성의약품 복제약(제네릭 의약품) 중심에서 기술수출로 자리 잡힌 것도 이때부터다. 임 선대 회장의 '신약 개발', '제약 강국' 정신은 지금까지도 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그의 유산을 두고 가족들이 분쟁을 이어가는 모습은 아쉽기만 하다. 급기야 친아들이 모친을 고소하는 일도 벌어지면서 사태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 1월 OCI그룹과의 통합을 두고 모녀와 형제가 대립을 세운 건 상속세 마련 문제가 컸다. 이들은 지난 2020년 8월 임성기 회장 별세 후 부과된 약 5400억원 규모의 상속세 재원 방안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당시 형제는 OCI그룹을 외부 세력으로 봤고, 모녀가 상속세 마련을 위해 지분을 넘기는 것이라고 봤다. 모녀는 OCI홀딩스가 한미그룹의 지주사가 되는 구조이나, 각 그룹의 독립성을 유지한 채 각사의 역량을 모으는 모델이기에 일반적인 인수합병(M&A)과 다르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임 선대 회장의 지인들을 비롯, 특수관계자, 소액주주들은 형제 손을 들었다. 그편이 회사와 자신들에게 조금 더 득이 되는 쪽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차남인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모친인 송영숙 회장을 지주사 공동 대표이사 자리에서 해임하고, 형제 편을 들었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돌연 모녀와 손을 잡으면서 이들의 갈등은 재점화했다.

모녀는 한미약품 박재현 대표를 중심으로 독립 경영을 선언했으나 임종훈 대표는 기존 인사프로세스를 따르지 않았다며 그의 직위를 전무로 강등시키는 한편, 한미약품을 제외한 계열사 대표들을 대동해 박 대표를 저격했다. 한미약품 전산망을 통제해 업무도 마비시켰다. 장남인 임종윤 사내이사는 본인이 최대 주주로 있는 코리그룹 한성준 대표를 앞세워 모친과 박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은 OCI그룹에게 했던 것처럼 박 대표를 외부 세력으로 치부하고 있다. 심지어 그룹의 단합을 위해 외부 세력은 더 이상 한미에 머물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30년을 한미약품에 몸을 담았던 인물이다. 한미약품의 주요 수익창출원인 개량신약 개발에 앞장서며 선대 회장의 신임을 받아왔던 직원을 한낱 외부인 취급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남아있는 직원들이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할 따름이다.

한미약품은 구멍가게가 아니다. 양측 모두 '한미'를 지키겠다는 명분을 제시하고 있지만 감정으로 경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직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기업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이 어떻게 회사를 지키는 길인 것일까. 신약 개발은 결국 돈과 인력싸움이다. 자긍심을 잃은 직원들은 떠날 수밖에 없고, 회사의 경쟁력은 자연스레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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