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입장에선 총보수를 인하했으니 투자 수익률 개선에 좋을 것이란 기대감이 솟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진짜 내 수익률 개선에 도움이 되는가'란 의문이 듭니다. 최근 이중과세 논란까지 불거졌으니 0.001%에도 예민할 수밖에 없죠. 또 다른 궁금증은 '제 살 깎기란 말이 나올 정도로 총보수를 인하하는 것이 운용사에 어떤 이득이 있는가' 입니다.
운용사들은 왜 총보수를 낮출까요?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 6일 'TIGER 미국S&P500·나스닥100'ETF 총보수를 낮췄습니다. 연 0.07%에서 0.0068%로 파격 인하를 결정한 것입니다. 지난 2020년 11월 연0.3%에서 0.07%로 낮춘 후 약 4년 만에 업계 최저 보수를 제시했습니다. 'TIGER 미국S&P500'은 지난해 국내 전체 ETF 중 개인 투적 순매수 규모 1위인 상품입니다.
ETF시장 점유율 2위 기업의 '최저 보수' 마케팅에 1위 기업인 삼성자산운용은 곧장 반격에 나섰습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S&P500·나스닥100 지수 추종 상품의 독주를 막기 위해 7일 '미국S&P500·KODEX 미국나스닥100' ETF의 총 보수를 기존 0.0099%에서 0.0062%로 낮췄습니다. 해당 상품은 지난해 4월 0.05%에서 0.0099%로 낮춘 상품들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점유율 3위 기업인 KB자산운용도 지난 11일 'RISE 미국S&P500', 'RISE 미국 S&P500(H)' 2종의 총보수를 기존 연 0.01%에서 연 0.0047%로, 'RISE 미국 나스닥100'의 경우 연 0.01%에서 연 0.0062%로 인하했다.
'득 보단 실', '치킨게임'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입니다. 지난해 4월 삼성자산운용이 총보수 인하를 결정했을 때와 달리 총보수 인하 혈투를 벌이는 이유는 뭘까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수치화'입니다. 투자자는 내가 투자하지 않았더라도 코스콤에서 운영하는 'ETF 체크(Check)'통해 ETF 상품 수익률은 물론 순자산 규모를 쉽게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운용사들이 경쟁하는 이유입니다. 운용사에선 ETF 상품 말고도 다양한 상품을 운용하지만 유일하게 수치화가 공개되는 것이 ETF 상품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와 맞물립니다. 바로 '평가'입니다. 점유율과 순자산이 공개돼 있다 보니 이는 곧 해당 운용사의 ETF본부장이나 대표에 대한 평가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1위' 타이틀에 대한 욕구도 총보수 인하를 부추깁니다.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시장점유율 격차는 1~2%포인트(P) 사이입니다. 내 살을 깎더라도 '1위 타이틀'을 가져온다면 그만한 명예가 없을 것입니다. 1위 기업은 반대겠죠. 내 살을 깎더라도 '1위 타이틀'을 뺏겨서는 안돼는 상황입니다.
운용사들은 왜 특정 ETF 상품만 총보수를 낮출까요?
올해 3사 운용사가 총보수를 인하한 상품의 공통점은 S&P500·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한다는 것입니다. 왜 전체 상품이 아닌 특정 ETF의 총보수만 낮췄을까요?
노후 대책으로 거론되는 퇴직연금과 연금저축, 개인형퇴직연금(IRP),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해외ETF'를 편입하면 절세가 가능합니다. 해외ETF 중 S&P500·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은 장기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상품입니다. 그렇기에 운용사들은 투자자들이 많이 찾는 상품의 총보수를 낮췄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야기입니다. 3사의 총보수를 보고 운용업계에선 해당 상품이 '적자 상품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적자더라도 장기투자자를 확보하기 위해 총보수를 인하, 경쟁사에 투자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더 낮은 총보수를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해당 상품들은 차별화도 어렵습니다. 기초지수를 추종하기에 운용 능력에 따른 수익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짚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총보수 인하가 투자자에게 이득이냐는 점입니다. 투자자가 살펴봐야 할 것은 '총보수'가 아닌 '실부담비용'입니다. ETF에는 합성총보수(TER)이 존재합니다. 운용보수와 판매보수, 수탁보수, 사무관리보수를 포함한 총보수에 ETF 운용에 필요한 각종 기타비용을 합한 것입니다. 자산 매매과정에서 발생하는 매매·중개수수료율도 있습니다. 이를 모두 합한 것이 실부담비용률이지요. 실부담비용률은 투자자가 상품설명서를 세세히 확인해야 합니다. 계산도 쉽지 않죠. 실부담비용은 매일 일할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일 기준 총보수 0.0068%인 'TIGER 미국S&P500'의 실부담비용률은 0.1387%입니다. 총보수 0.0047%인 'RISE미국S&P500'의 실부담비용률은 얼마일까요? 총보수가 낮으니 실부담비용률도 낮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해당 상품의 실부담비용률은 0.1587%입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상품보다 0.02%P가량 높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말합니다. "S&P500·나스닥100의 일 변동폭을 고려하면 총보수 인하가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마케팅 측면에선 이만한 수단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선 실부담비용률이나 괴리율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이죠.
총보수 인하 말고는 점유율 확대 방안은 없을까?
안타깝게도 현 시장 상황에선 '총보수 인하'말고는 운용사가 눈에 띄게 점유율을 확보할 묘책은 없습니다. ETF 상품 출시를 위해선 지수 개발이 필요한데, 공들여 지수를 개발해 상품을 출시하면 얼마 되지 않아 경쟁사에서 비슷한 상품이 출시되기 때문입니다.
'ETF상품 베끼기'는 해당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중소형사가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으면 곧장 모방 상품이 나옵니다. 비용도 더 저렴하게 말이죠. 투자자 이탈은 물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의욕도 떨어집니다. 대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품 베끼기'에서 자유로운 운용사는 없는 것입니다. ETF상품 베끼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 제기되고 제도도 손을 봤지만 실효성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됩니다.
가속화되는 시장 혼탁···투자자 신뢰 저하 우려
2002년 10월 시작된 ETF 시장은 2011년 순자산 규모가 10조원으로 성장, 지난 2023년 100조를 달성했습니다. 올해는 이미 185조원을 넘어섰죠. 하지만 운용사들은 시장 정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기 보단 점유율 경쟁에만 치중하는 모습입니다.
점유율 순위가 바뀌면 질적 성장에 관심을 가질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1위 타이틀 탈환을 위해, 2위를 따라잡기 위해, 점유율을 더 높이기 위한 정책들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정책들이 투자자들에게 이득이 될까요? 시장 혼탁만 가중될 것이라는게 업계 중론입니다. 금융당국이 ETF 시장을 주시하는 이유죠.
지난 6일 운용사의 총보수 인하 경쟁에 대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우량상품을 만들고 질적 서비스를 제고시키는 노력을 간과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분을 인지하고 있다"며 "보수율에 개입할 수 없지만 질적 경쟁이 결여된 채 시장이 혼탁해질 수 있는 거라면 안하는 것이 시장참여자들의 신뢰를 얻는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습니다.
운용업계 관계자들은 이복현 금감원장의 발언 중 '신뢰'에 주목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총보수 인하 상품으로 인해 운용사의 수익에 문제가 발생하진 않을 것입니다. 해당 상품에서 발생한 손실은 다른 고비용 ETF로 상쇄 가능하기 때문이죠. 문제는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마케팅이 투자자들의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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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ljh@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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