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출신 인사 재선임, 실질적 변화 부재독립성·전문성 강화 요구 증가에도 전관 선임 지속롯데, 실무형 전환 시도했으나 관료 선임은 여전
특히 이마트의 경우 올해 임기 만료된 사외이사 4명 중 3명을 교체했지만, 국세청 출신 세무 전문가와 학계 중심 인사를 다시 선임하면서 실질적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일각에선 주주총회 일정 지연이 외부 전문성 확보를 위한 조치로 해석됐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존 인선 틀을 답습했다는 분석이다.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으나, 실제 현장에선 '실제 경험보다 인맥과 이력'이 여전히 우선되는 모습이다.
반복되는 전관 선임, 견제보단 방패막이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유통 대기업들이 사외이사 구성을 재편했지만, 고위 관료 중심의 선임 기조는 여전했다. 이마트는 국세청 조사국장을 지낸 이준오 세무법인 예광 회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고, 현대백화점은 중부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김용균 이현세무법인 고문을 신임 사외이사로 발탁했다. 신세계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장 출신 김한년 위노택스 고문과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곽세붕 김앤장 고문을 재선임했다.
기업들은 이들의 세무·법률 전문성을 강조하며, 각종 규제 및 조사 리스크에 대한 사전 대응 차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선임 구조가 지속되면서 사외이사가 독립적인 견제 기능을 하기보다는 대관 창구나 리스크 완충 역할에 머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현대홈쇼핑은 2012년 서울지방국세청으로부터 대규모 세무조사를 받던 중 전직 국세청 고위직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했고, 이후 부가세 추징액이 542억원에서 7억원으로 대폭 줄어든 사례로 지목됐다. 그 이후 해당 자리는 14년 동안 국세청 출신 인사들이 이어받으며 사외이사의 독립성 논란을 키웠다. 현대백화점그룹 역시 상장 계열사 13곳 중 3곳에서 국세청 전관들이 연속적으로 사외이사를 맡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전관의 이사회 참여가 관행처럼 굳어지며 사외이사의 독립성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마트·신세계, 변화 없는 교체···학계·관료 고착화
사외이사 구성을 놓고 일정 지연까지 있었던 이마트는, 결과적으로 기존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마트는 이준오 회장을 비롯해 소비트렌드 분석 전문가 최지혜 서울대 연구위원, 김재욱 고려대 교수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상호 전 대전지검장도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모두 관료나 학계 출신 중심으로, 유통 실무 경험이 있는 인물은 없었다. 이마트 측은 이들의 세무 및 소비 트렌드 분석 역량을 강조했지만, 일각에서는 실질적 변화가 없는 '형식적 교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이마트는 최근 10년간 2월 말에 주총 안건을 공시해 왔지만, 올해는 일정이 10여 일 늦춰졌다. 이에 따라 외부 인선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유통업계 실무 경험이 없는 인사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감시자'보다는 '형식적 거수기'에 가깝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신세계도 공정거래 이슈, 부동산 개발, 경영 승계 등 이해관계를 고려한 인사들이지만, 대부분 관료 출신이다. 진희선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 김한년 전 국세청 조사1국장, 곽세붕 전 공정위 상임위원 등이 선임되면서, 이사회 내 '전관'의 무게는 오히려 강화됐다.
롯데, 실무형 전환 시도···하지만 관료 선임은 여전
롯데쇼핑은 기존 관료·학계 중심 인사에서 기업 경영 경험자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한 대표 사례다. 조현근 전 풀무원샘물 대표, 히로유키 카나이 토키와 코퍼레이션 CEO 등 글로벌 유통 경험을 갖춘 인물들이 사외이사로 합류했고, 정창국 전 에코비트 CFO도 감사위원으로 선임됐다. 이들은 모두 유통 현업에서 직접 경영을 맡은 이력을 갖고 있어 실무 중심의 인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존 사외이사들이 대부분 교수나 관료 출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비교적 파격적인 행보였다.
또한 롯데그룹은 사외이사 의장제도, 선임사외이사 제도, BSM(이사회 역량 지표) 등을 도입하며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비상장사에서 시범 도입한 뒤 상장사 전체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선임사외이사는 사외이사만으로 이사회를 소집할 수 있고, 경영진에 현안 보고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이사회 중심의 경영 감시체제를 정립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관료 선임 기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롯데지주는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출신 서영경 연세대 객원교수를 신규 감사위원 겸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서 교수는 한국은행 부총재보를 지낸 거시경제 전문가로, 유동성 이슈 대응 등 재무 안정성 강화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관료 인사가 여전히 사외이사 명단에 포함되는 만큼, 롯데의 변화가 일시적인 제스처에 그치지 않으려면 제도적 후속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외이사제도 도입 28년째, 유통 대기업들이 이를 경영 감시 기능보다 '리스크 예방'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뿌리 깊게 유지되고 있다. 실질적 견제가 가능하려면 출신보다 역할 중심의 인사 검증과 회의 기록 투명화, 선임 기준 공개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웨이 조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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