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석유화학, 글로벌 경기침체·中 공급과잉 '이중고'日·EU, 업체 수 축소 등 내수 시장 수익 잡기 '총력'"범용 대신 전략적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 나서야"
일각에서는 유럽연합(EU)과 일본이 10년 이상에 걸쳐 추진한 구조조정 사례를 참고해 지속가능한 산업 체계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3년 만에 영업익 99% 감소···늪에 빠진 韓 석화
국내 석화업체들은 지난 2020년대 초까지 역대급 '황금기'를 누리며 빠르게 외형을 키웠다. 당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로 석화 전방산업이 위축되긴 했지만, 오히려 위생용품과 일회용품 등의 사용량이 늘며 석화 소재의 매출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여기에 당시 에틸렌 생산 증설을 예고했던 중국도 계획을 미루면서 국내 기업들이 반사 이익을 얻었다.실제 당시 일부 기업은 분기 영업이익으로 최대 6000억원까지 올리기도 했고, 한 해 매출액으로는 50조원을 넘기기도 했다. 이른바 석화업계의 '르네상스' 시절이었다.
다만 이들의 활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불과 2년 전인 2023년부터 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화됐고, 중국의 공급과잉까지 겹쳐 우리 기업들은 설 자리가 좁아졌다. 중국은 합성수지와 폴리염화비닐(PVC) 등 국내 석화 제품의 30~4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이기 때문에, 중국이 스스로 생산을 늘리면 우리나라의 수출 물량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적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앞서 국내 석화 빅4(LG화학·롯데케미칼·금호석유화학·한화솔루션)는 약 3년 전인 지난 2021년 합산 9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지난해에는 합산 영업이익이 327억원에 그쳤다. 약 3년 만에 영업이익이 99% 줄어든 것이다.
전환 더딘 韓 석화···범용 탈출 숙제
업계에서는 국내 석화 산업의 침체 배경으로 범용 제품 의존을 꼽는다. 물론 중국발 영향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업황 부진 속에서도 스페셜티나 그린 사업 등 고부가 중심의 사업으로 방향을 빠르게 틀지 않고 범용 제품 중심의 전략을 고수한 것이 위기를 키웠다는 해석에서다.
국내 석화 기업들은 대부분 나프타분해설비를 기반으로 한 에틸렌 생산에 집중되어 있어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범용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구조적으로 고부가 제품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은 데다가 기술 투자와 인증, 고객 네트워크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에 고부가 시장으로의 빠른 전환도 쉽지 않은 상태다.
물론 일부 기업들이 고부가 시장 중심으로 사업 전략을 재편하고, 바이오나 전지소재 등 신사업도 확장하고 있지만 산업 전반의 구조 전환에는 아직까지 뚜렷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 모양새다. 특히 EU와 일본이 공급과잉을 피하기 위해 범용 제품 감산과 고부가 전환을 병행한 것과 비교하면 국내 업계의 전환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평가다.
"경쟁력이 우선"···과감하게 설비 폐쇄한 EU·日
일각에서는 EU와 일본이 장기간에 걸쳐 구조조정을 단행해온 만큼, 이들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먼저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1980년대 초 제2차 오일쇼크 이후 '특정산업구조개선 임시조치법'(산구법)을 앞세워 본격적인 석화 구조조정에 나섰다. 해당 법에는 ▲효율적인 설비로의 생산 집중 ▲공동투자 ▲공동판매회사 설립 ▲과잉설비 처리 등이 담겼다.
또 이 기간 일본은 기업 간 통합형 설비 운영 모델로 석화 기초 원료인 에틸렌 생산능력 감산 등을 시도하며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또 2010년대 이후에는 구조조정과 특정 제품을 생산하는 한편, NCC 통폐합도 유도했다. 사업의 대형화와 전문화, 업체수를 축소해 내수 시장에서 수익성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에서다.
일례로 일본 미쓰비시화학은 지난 2001년 연산 27만톤(t) 규모의 에틸렌 설비를 폐쇄하고, 정밀화학과 생명과학 분야로 연구개발(R&D) 역량을 집중시켰다. 이는 당시 일본에서도 채산성이 낮은 범용 설비를 과감히 접은 결정으로 평가됐다. 또 2012년에는 가시마 사업소의 NCC 플랜트 2기 중 1기의 가동을 중단하며 운영 통합에도 나섰다.
EU도 일본과 비슷한 방식으로 생산 시스템 다각화에 나섰다. EU는 지난 2010년 이후로 범용 석화 구조조정을 점진적으로 시작했다. 이미 2000년대부터 NCC와 범용 소재를 축소하긴 했지만, 2010년 이후로는 그 속도를 더욱 높였다.
당시 EU는 석화 수익성을 가늠짓는 에틸렌 가격이 계속해서 손익분기점(300달러)을 밑돌자 범용제품 중심의 성장전략이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EU는 석화 대신 바이오와 특수가스 등에 R&D 투자를 확대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도 모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일본과 EU는 중국의 공급과잉 등에 대응하기 위해 2010년 대비 2023년 석유화학 설비 규모를 각각 15%, 9%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우리나라는 70% 늘린 것으로 조사됐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우리나라 기업들도 비핵심 자산 매각을 실시하며 구조조정 전략을 펼치고 있다. 사업 확장에 필요한 현금을 확보해 범용 사업 비중을 줄이고, 스페셜티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이들의 행보는 중국의 공급과잉 속에서 기존 범용 중심 체계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수출 의존도가 높아 구조조정이 늦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언제까지 중국의 공급과잉 속에서 범용 제품으로 버틸 수 없는 만큼 이제라도 전략적인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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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전소연 기자
soyeon@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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