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 순환출자 사실상 소멸소송 패소율 4년 만에 한 자릿수사건 부실처리에도 문책·징계 없어2년 차에 공정거래법 대수술 나서
김 위원장이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재벌개혁의 효과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기업전체를 지배하는 폐단을 낳아온 대기업집단(자산규모 5조원 이상)의 순환출자 고리가 최근 1년 사이에 거의 소멸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1일 지정 당시 31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이 보유한 93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현재 10개로 줄어들었다. 순환출자란 3개 이상의 계열출자로 연결된 계열회사가 모두 계열출자회사 및 계열출자대상회사가 되는 계열출자 관계를 말한다.
쉽게 말해 대기업집단 내 A계열사가 B계열사에, B계열사가 C계열사에, C계열사가 다시 A계열사에 출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출자 방식은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기업전체를 지배하는 폐단을 불러왔다.
또한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투명성도 훼손하는 출자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과 계열사 동반 부실 등을 차단하기 위해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같은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취임 며칠 뒤 4대 그룹 최고경영자들을 만나 “기업인들 스스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선제적인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지속적으로 재벌그룹의 자발적 개혁안 마련을 촉구했고 그 결과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현대중공업, CJ, LS, 대림, 효성, 태광 등 10개 집단이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 전환, 총수일가 내부거래 개선 등을 담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그 결과 재벌개혁의 초석을 닦아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상조 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매년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공정위의 행정소송 패소율이 지난해 한 자릿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정위가 직접 진행한 소송에서는 패소가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작년 공정위가 치른 소송은 총 163건(확정판결 기준)이었다. 과징금이나 경고 처분 등 공정위의 제재는 법원의 1심 효력을 가진다. 이런 소송 중 법원이 공정위가 제재한 행위를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패소는 작년 15건(9.2%)이었다. 패소율은 4.2%를 기록한 2013년 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김 위원장은 평소 어공이란 단어를 즐겨 쓴다. 자신은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 늘 공무원이던 ‘늘공’들과 달라서 공직이 낯설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조직 장악 면에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지속해서 집안단속을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공정위 신뢰 제고 추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재벌개혁이나 갑을관계 해소나 새로운 산업시장질서 구축 등 못지않게 중요한 책임이 공정위 조직을 혁신해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는 것”이라며 공정위 내부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가 사건을 부실하게 처리한 공무원들에 대한 문책과 징계를 제대로 추진하지 않으면서 김 위원장이 줄곧 강조해 온 내부개혁 의지가 다시 무색해 졌다. 공정위가 중요 사실을 일부로 누락한 자료에 대한 과징금을 깎아준 성신양회 사건을 담당한 국장과 과장에 대해 ‘주의’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같은 처분은 이해하기 힘들다. 김 위원장은 “재벌개혁이나 갑을관계 해소나 새로운 산업시장질서 구축 등 못지않게 중요한 책임이 공정위 조직을 혁신해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는 것”이라며 “사건처리 부실에 책임이 큰 경우에는 1회만 위반하더라도 징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성신양회 과징금 감경 신청 처리 과정에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성신양회의 감사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은 채 감경 처리를 한 관계 공무원들에 대한 문책은 주의 조치로 끝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변호사 중 한 명이 과거에 공정위에 근무한 적이 있는 이른바 ‘전관’이라 전관예우를 해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정위는 지난 2월 7일 전원회의를 열어 가습기 살균제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SK케미칼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업무처리였다. 이미 SK케미칼은 지난해 12월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SK디스커버리와 신SK케미칼로 분할해 지주회사 격인 SK디스커버리를 고발해야 했지만 SK케미칼을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 같은 오류를 확인하고 지난 2월 28일 전원회의를 다시 열어 SK디스커버리에 대해 시정조치와 함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로 의결했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일인 4월 2일을 불과 한 달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검찰은 공정위가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를 고발한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결국 공정위의 무성의한 사건처리로 인해 을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한두 번도 모자라 세 번씩 가습기 사건 피해자의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이다. ‘공정거래 법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의 민간위원인 이동우 변호사는 “공정위가 잘못된 사건 처리와 관련해 관계 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김 위원장의 1년이었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공정거래법이 1980년 제정 이래 38년 만에 전면 개편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10대 그룹 CEO 만남에서 “공정하고 혁신적인 시장경제 시스템 구축을 위해 실체법과 절차법을 망라한 공정거래법제의 전면개편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공정하고 혁신적인 시장경제 시스템 구축을 위해 실체법과 절차법을 망라한 공정거래법제의 전면개편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에 대한 제도적 개선책도 강구하고 있다”며 “공정거래법 개편 과정에서 재계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현재 재벌규제는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순환출자, 사익편취 금지, 각종 공시의무 등을 부여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현행 규제들은 40여년간 필요에 따라 추가되다보니 법의 사각지대나 법리상 정합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 4차산업혁명으로 새롭게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점을 둘 게획이다. 공정위는 오는 7월까지 특위를 운영한 뒤 그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을 마련,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뉴스웨이 주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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