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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초 두산에 편입···한때 매출 50위권

[두산重 기사회생③]2000년초 두산에 편입···한때 매출 50위권

등록 2020.03.27 14:45

수정 2020.03.27 14:47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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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용오 회장 시절 한국중공업 인수 당시 두산그룹 사장 박용만, 진두지휘2008 금융위기 이후 반짝 전성기 누려두산건설 45년만에 상폐···자회사 편입

2000년초 두산에 편입···한때 매출 50위권 기사의 사진

두산중공업은 수주 부진에 따른 경영상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난 2018년 인력 조정 등의 고정비 절감 방안을 마련했다. 그해 연말에는 두산중공업 직원 300여 명이 계열사로 옮겨갔고, 조기퇴직 대상을 56세에서 50세 이상으로 확대했다.

이듬해인 지난해 초부터는 과장급 이상 사무직 전 직원을 대상으로 두 달씩 월급의 50%를 받는 조건으로 유급 순환 휴직을 실시해왔다. 이같은 인력조정안은 작년 3분기까지 이어졌다.

두산중공업의 구조조정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올 초에는 추가적인 비상경영 조치가 필요해 직원들의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하지만 회사 운영자금이 바닥난 상태여서 추가적인 비용절감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지난 10일 노조에 휴업을 검토하자는 내용의 노사협의요청서를 보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일감이 줄어든 상태여서 유휴 인력을 대상으로 70% 급여를 주면서 휴직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노조에 공문을 보낸 것”이라며 “아직 휴업이 결정된 것은 아니고 노조와 협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휴업에 돌입해도 창원 본사 사업장의 운영은 지속한다. 인건비를 줄이는 순환 휴직 방식으로 비용절감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두산중공업의 전신은 1962년 설립된 현대양행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현대양행은 산업용 및 건설용 원자재 설비를 수입하고 시멘트 등을 수입하는 무역회사로 출발했다. 1973년 군포 공장을 설립했고 3년 뒤 미국 CE사로부터 영월 복합화력발전소에 들어갈 열회수용 보일러를 수주해 역사적인 첫 완성품을 제작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0년에 한국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정부가 직접 투자하는 공기업 체제로 전환했다. 당시 산업은행(43.8%), 전력공사(40.5%), 외환은행(15.7%)이 지분을 보유했다. 1982년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공장인 창원공장을 준공해 한국 플랜트산업의 새 장을 열었다. 착공에 들어간지 6년 만이었다.

1990년대는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이룩한 시기였다. 1993년 사우디아라비아 해수담수청이 발주한 총 9억5000만 달러 규모의 쇼아이바 해수담수화플랜트를 수주했고, 1997년 중국핵공업집단공사(CNNC)가 발주한 진산원전 증기발생기를 수주해 원전설비 수출시대를 열었다. 1999년에는 미국 세코야원전 1호기 교체용 증기발생기를 수주함으로써 원전 도입 30년 만에 원전 종주국인 미국 시장에 원전설비를 역수출하는 쾌거를 거뒀다.

외환위기(IMF) 이후 1999년 정부는 공기업이던 한국중공업을 민영화 대상으로 지정하고 지분매각을 추진했다. 한국중공업 인수에 관심을 보인 회사는 두산그룹이었고 두산컨소시엄이 인수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2000년 두산그룹에 인수된 한국중공업은 이듬해 사명이 두산중공업으로 변경했다. 당시 두산은 오너가 3세였던 고 박용오 회장이 그룹을 이끌었다.

두산중공업 인수를 진두지휘했던 인물은 당시 두산그룹 기획조정실 실장에서 전략기획본부 사장으로 승진했던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었다. 박용만 회장은 이후에도 두산인프라코어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결과적으로 한국중공업의 인수는 오비맥주로 유명했던 소비재 회사 두산이 외환위기 이후 중공업 회사로 탈바꿈하는 전환점이 됐다. 두산 관계자는 “한국중공업 인수는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던 게 큰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중공업을 품에 안은 두산은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그룹 덩치를 키워갔다.

두산중공업은 성공적인 민영화로 세계 플랜트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0년 중반부터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등 중동발 수주가 많았다. 수주 실적을 등에 업고 회사 성장의 정점을 찍었던 2010~2012년에는 대기업 매출 5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 무렵 두산건설은 국내 건설사 시공능력평가순위 10위였다.

2016년까지만 해도 9조원을 넘긴 신규 수주는 2018년 4조원대로 수주 물량이 반토막 나면서 경영상 어려움을 겪게 됐다. 지난 5년간 누적 당기순손실은 2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다행히 정부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원 규모의 회사 운영자금을 대출해주기로 확정하면서 회생 가능성을 열어놓긴 했다.

두산중공업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임직원 수는 5900여 명이다. 16개의 해외 자회사와 23개의 지점 및 사무소를 두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3월 별세한 고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이 지난 2008년 사장으로 취임한 뒤 2016년 5월부터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전문경영인(사내이사)으로 정연인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과 최형희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 등이 있다.

뉴스웨이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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