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노선반납·운임인상 제한 등 시정조치 해외 경쟁당국, M&A신청 국가 결정에 큰 영향 승인하되, '고강도' 조건 제시할 개연성에 무게'자국 우선' EU·중국 변수···알짜슬롯 회수 등 가능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전날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주식 63.88%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다만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해 두 항공사의 중복노선 국제선 65개, 국내선 22개 중 경쟁제한성이 있는 국제선 26개(40%)과 국내선 8개(50%)을 대상으로 슬롯과 운수권을 회수하는 구조적 조치와 운임인상 제한 등의 행태적 조치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을 완료하는 날로부터 10년간 구조적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행태적 조치는 구조적 조치가 이행될 때까지 지속된다. 세부적인 구조적 조치는 ▲인천공항 슬롯 이전 ▲해외공항 슬롯 이전 ▲운수권 이전 ▲운임결합 협약 ▲인터라인 협약 ▲코드쉐어 협정 체결이다.
통합 항공사는 경쟁제한성이 있는 노선에 신규 항공사가 진입하거나, 기존 항공사가 증편할 경우 국내공항 슬롯을 반납해야 한다. 1개 항공사라도 점유율이 50% 이상일 경우 결합에 따라 증가된 탑승객수를 감소시킬 수 있는 슬롯 개수 만큼 내놔야 한다.
해외 공항 슬롯의 경우 신규 진입 항공사가 ▲외국 공항 슬롯 이전·매각 ▲운임결합 협약 ▲국내 공항 각종 시설 이용 협력 ▲영공통과 이용권 획득을 위한 협조 등을 요청했을 때,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했다. 운수권 이전의 경우 국제선 중 항공 비(非) 자유화 국가의 총 11개 노선이 대상이다. 슬롯 반납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 행태적 조치는 ▲운임인상 제한 ▲공급량 유지 ▲서비스 품질 유지 ▲마일리지 제도 유지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요구한 시정조치가 항공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고 입을 모은다. 통합 항공사의 시너지 효과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항공업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적절한 대응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조치들은 오히려 통합항공사의 경영보폭을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10년간 이행감시위원회의 감독을 받아야 하는 점도 경영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도 이 같은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통합 항공사를 포기하면, 아시아나항공은 과도한 부채로 심각한 경영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항공산업 경쟁력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 공정위의 요구사항을 수용했다는 분석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절차는 이제 마지막 난관만 남겨두고 있다. 아직 심사가 진행 중인 6개국으로부터 기업결합 승인 통보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기업결합의 경우 해외 경쟁당국 중 한 곳이라도 불허 결정을 내리면, 통합은 무산되게 된다.
현재까지 심사를 완료한 국가는 우리 공정위를 포함해 ▲태국 ▲필리핀 ▲뉴질랜드 ▲대만 ▲터키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총 9개국이다. 심사 결과를 대기 중인 국가는 ▲미국 ▲영국 ▲호주 ▲EU ▲중국 ▲일본 6개국이다. 필수 신고국가는 미국 등 4개국이고, 향후 조사 가능성이 있는 임의 신고국가는 영국 등 2개국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항공 자유화 지역인 만큼, 두 항공사의 기업결합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특히 대부분 해외 경쟁당국이 우리 공정위의 승인 조건을 따를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서 슬롯 반납 등이 담긴 '조건부 승인'을 내놓을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공정위 역시 "아직 심사가 진행 중인 만큼, 해외 경쟁당국이 동일한 노선에 대해 공정위 조치와 상이한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EU와 중국은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짙다는 점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승인 쪽으로 무게가 기울지만, 자국에 유리한 여러가지 조건을 제시할 것이란 전망이다.
EU가 최근 국내 조선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불허한 것도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결과다. 특히 EU는 항공사간 기업결합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과거 캐나다 항공사 1위 에어캐나다와 3위 에어트랜샛의 합병, 스페인 1위 항공사 IAG와 3위 에어유로파의 합병을 거절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에어캐나다의 경우 EU의 시정조치 요구에 자발적으로 인수를 포기했다. 또 스페인 항공사는 EU 소속 회원인 만큼, EU 국가간 이해득실을 더욱 꼼꼼히 따진 결과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유럽 중복 노선은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이다. 두 항공사의 이들 노선 점유율은 많아야 0.5%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경쟁제한성은 크지 않지만, EU는 회원국 항공사들에 유리하도록 주요 공항 슬롯을 회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중국도 자국 항공산업 보호를 위해 해외 항공사의 진입 자체를 철저히 규제해온 만큼, 인근 국가의 '메가 항공사' 탄생을 반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 시정조치가 약한 수준이 아닌 만큼, 해외 경쟁당국에서도 강도 높은 조건부 승인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공정위의 '10년 기간 제한'이 해외에서도 적용될 경우 글로벌 영향력은 오히려 위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해외지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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