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은 지난달 29일 이사회에서 국내지점 영업을 총괄하는 중소중견부문을 지역성장부문으로 변경하는 등의 '2023년 조직개편안'을 확정했다.
산업은행은 부문 내 네트워크지원실을 '지역성장지원실'로 통합하고 산하에 '동남권투자금융센터'를 신설해 각 조직을 부산으로 옮길 계획이다. 동시에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서 운영하는 해양산업금융실을 2실 체제로 확대한 뒤 조선사 여신 등 해양산업 관련 영업자산도 이관한다.
내년 1월 조직개편이 이뤄지면 산업은행 본점 해양금융 조직과 해운 관련 여신을 취급하는 서울 종로·여의도 지점 업무 담당자 등이 해당 지역에 배치될 것으로 점쳐진다. 그 숫자는 100여 명에 이를 전망이다.
산업은행 직원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직개편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하나, 결국 부산으로의 이전이 시작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산업은행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명시한 한국산업은행법(산은법)이나 은행 정관과 조직개편안에 거리가 있어서다.
먼저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이동하려면 산은법 4조1항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기에 은행 차원에선 이사회·주주총회와 금융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정관을 수정하는 작업도 거쳐야 한다.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해양금융 담당 조직을 부산광역시에 설치한다는 정관 3조가 바로 그 내용이다. 그러나 강 회장을 비롯한 이사진은 사전에 그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에 산업은행 노조는 이사 전원을 배임·직권남용 혐의 고소·고발하는 한편, 인사 정지 가처분신청과 강 회장 퇴진운동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직개편을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 임직원의 공분을 산 것은 이 과정이 내부적 공감대 없이 독단·기습적으로 이뤄졌다는 데 있다. 강 회장은 취임 초부터 산업은행 이전과 관련해선 임직원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줄곧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소통위원회를 가동하지 않았고, 180일 가까이 아침마다 본점 로비에서 '준법집회'를 이어온 노조와도 전혀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물론 대화가 성사됐다고 해서 정책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국정과제를 이행해야 한다는 강 회장의 뜻이 워낙 완고해서다. 지난 9월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관련 질의에 국정과제를 거스를 수 없고, 최고 책임자의 뜻을 뒤집을 수 없다는 말로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암시했다.
그럼에도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배려나 노력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여기서 산업은행의 조직개편과 이전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인지, 많은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고 편법을 쓰면서까지 할 일인지 또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실제 개편안은 정치권을 비롯해 사외이사 사이에서도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을 정도로 복잡한 사안이었다. 조한홍 이사의 갑작스런 사임이 방증하듯, 동의하는 사람이 적었다는 얘기다. 섣부른 이동이 국가 정책금융 시스템과 은행의 방향을 흔들 수 있고,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직원에게도 부담을 안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개편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사실상 강 회장 한 명뿐이다. 법 개정이 지지부진한 양상을 띠는 와중에 본점 이전에 대한 성과로 윤석열 정부에 인상을 남길 수 있어서다.
게다가 강 회장은 '부산행'의 고민에서 자유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은행이 금융당국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2028년까지 이전을 마치겠다고 한 것으로 미뤄 봤을 때, 임기(2025년까지) 중 회장 집무실을 옮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강 회장은 자신만 '쏙' 빠진 채 직원에게 걱정을 떠안긴 셈이다.
다만 모두가 우려하는 것처럼 현재 우리 경제는 상당히 어렵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맞물려 가계엔 이자부담이 크게 불었고, 한계기업은 차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탄소중립도 신경 써야 한다. 이 가운데 국내 최대 정책금융기관이 과연 자리를 옮기는 데 매달려야 하는지 의문이다.
강 회장은 직원에게 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방향이 옳지 않다면 과감히 틀어야 한다. 정책금융기관의 대표이자 일원으로서 동료를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부디 산업은행의 노사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란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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