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 4사, 1분기 합산 영업익 1조원대···전년比 69% ↓작년 하반기엔 '1조 적자'···포트폴리오 다각화 '총력'정제마진, 5주 연속 손익분기점 안착···변수는 '유가'
국제유가·정제마진 '동반 추락'···불황 그늘 드리웠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GS칼텍스)는 올해 1분기 합산 영업이익 1조456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4조7668) 대비 무려 69.4% 급감한 규모다.
정유사들이 이처럼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배경에는 이들의 실적 지표인 정제마진과 국제유가의 동반 추락에 있다. 두 지표 추이는 정유업계 실적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통상 두 지표가 상승하면 정유사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반대로 두 지표가 하락하면 이들의 실적도 타격을 입는다.
정제마진은 휘발유나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 각종 비용을 뺀 금액이다. 업계는 통상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BEP)으로 본다. 4~5달러 이하로 내려가면 손실이, 이상이 되면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실제 정유사들이 지난해 상반기 유례없는 실적을 기록했을 당시, 두 지표는 모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맞물려 연일 폭등해 이들의 호실적을 이끌었다. 양국 전쟁에 따라 서방 국가들이 대(對)러 제재를 선언, 러시아산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면서다.
이에 따라 정제마진은 6월 넷째 주 손익분기점을 한참 상회하는 배럴당 29.5달러를 기록했고, 국제유가도 같은 시기 배럴당 120달러를 웃돌며 정유사들의 실적 개선에 힘을 보탰다.
다만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경기침체로 두 지표 모두 힘을 잃고 추락, 정제마진은 급기야 9월 셋째 주 배럴당 0달러까지 내려가며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120달러를 넘나들던 국제유가도 하락세를 보이며 90~110달러 선에 머물렀다.
두 지표의 하락세는 이들의 하반기 실적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다. 이들 4사는 지난해 4분기 합산 1조2932억원이란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4사 모두 각각 석유 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을 보이며 호황을 누렸던 상반기 대비 낮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차전지·에너지로 '맞대응'···불황 우려 잠재우기 '총력'
지난해 하반기에 시작된 경기침체 우려가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지면서 정유사들은 실적 개선을 위해 외부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섰다. 본업과 성장성이 높은 외부 사업을 함께 키워 미래 산업에도 적극 대응하겠다는 차원에서다.
업체별로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을 영위 중인 자회사 SK온을 적극 키우고 있다. 최근 글로벌 전기차 시장 급성장에 따라 국내외에 거점을 세운 SK온을 앞세워 배터리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투자 유치도 활발하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7월부터 1년 새 SK온의 자금 조달을 10조원 이상 성공시켰다. 통상 자금조달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 성장 가치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시장 내 SK온의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된 것으로 풀이된다.
SK온도 모회사 기대에 부응하듯 연일 활기찬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내외 거점을 꾸준히 증설하는가 하면, 최근 미국 조지아주 정부로부터 현대차그룹과 세운 배터리 합작공장에 9000억원 상당의 인센티브도 수령할 것으로 알려졌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샤힌 프로젝트'에 9조2580억원의 투자를 결정했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정유·석유화학 스팀크래커로, 모회사 아람코가 국내에 투자하는 프로젝트 중 사상 최대 규모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2018년 40억달러 규모의 1단계 석유화학 프로젝트의 후속으로, 완공 후 연간 최대 320만톤(t)의 석유화학 제품 생산이 예상된다. 에쓰오일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정유와 화학을 쌍끌이하겠다는 목표다.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는 '화이트 바이오' 등 친환경 사업을 키운다. 먼저 GS칼텍스는 국내 기업들과 탄소중립 사업을 확대한다. 남동발전과는 청정수소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생산한 청정수소를 여수산단으로 공급하는 여수 수소허브 사업을 추진한다. 이 밖에 LG화학과는 친환경 바이오 원료 상업화를 위한 실증플랜트 구축에도 나섰다.
HD현대오일뱅크는 미래 먹거리로 ▲블루수소 ▲친환경 화학 소재 ▲차세대 화이트 바이오 사업을 낙점했다. 먼저 연내 대산공장 1만㎡ 부지에 연산 13만톤 규모의 차세대 바이오디젤 제조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이듬해 공장 내 일부 설비를 연산 50만톤 규모 수소화 식물성 오일(HVO) 생산설비로 전환한 뒤, 2026년에는 화이트 바이오 부산물을 활용한 바이오 케미칼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과 같은 고유가 시대에는 정유 사업이 도움이 됐지만, 현재는 기조가 친환경으로 바뀐 만큼 많은 기업이 친환경 사업을 키우는 추세"라며 "지난해 상반기에 벌어들인 돈으로 미래 신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실적도 불투명···"사우디 감산 소식 있는데 왜?"
내달 예정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산유량 감산 소식에도 하반기 정유업계 실적은 불투명할 것이란 전망도 속속 나오고 있다. 통상 산유량 감산은 유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만, 글로벌 경기침체 속 유가 상승은 오히려 소비 위축을 끌어낼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앞서 사우디는 내달부터 약 한 달간 원유 생산량을 일일 100만배럴 감산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는 소폭 상승세를 보였지만, 이후 미국과 이란의 핵 합의 임박 소식에 등락을 거듭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방적인 원유 감산을 통해 유가가 올라가게 되면 실 구매력이 떨어지게 된다"며 "특히 현재처럼 경제 성장률 자체가 둔화된 상황에서 기름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 위축을 낳을 수 있어 정유업계 입장에서는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전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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