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기아, 한국GM 노조가 속한 한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경직된 노사관계를 유지하며 매년 여름마다 파업에 나섰습니다. 완성차 노조가 '귀족노조' 프레임에 갇히게 된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매년 반복되는 파업 탓에 자동차업계의 하반기 실적은 늘 안갯속이었는데요. 대표적으로 현대차 노조의 파업은 지난 1996년부터 2018년까지 3차례를 제외하고 17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교섭 분위기는 과거와 많이 달라진 모습입니다. 현대차는 노조 설립 이래 처음으로 5년 연속 무분규를 달성했고, 한국GM도 최근 3년 연속 무분규로 임금협상을 마쳤습니다. 금속노조 소속이 아닌 KG모빌리티와 르노코리아는 파업이란 단어가 어색할 만큼 원만한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완성차업계의 노사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도약하는 원년인 셈이죠.
완성차 노조가 투쟁 깃발을 내려놓은 건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130년이 넘는 자동차산업의 역사에서 전동화 전환과 디지털화는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챠량의 전동화 및 디지털화가 본격화되면서 생산직 인력 감축이 불가피해진 상황입니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의 부품 수는 내연기관차의 64% 수준인 1만8900개에 불과합니다. 복잡한 엔진 대신 배터리와 모터가 쓰이기 때문에 생산직의 숫자는 최소 20%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회사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사가 공동으로 전략을 짜고 실천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교섭을 진행 중인 기아 노조에게 바라는 점이 있습니다. 표심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적 교섭주의와 대립적 노사관계를 답습하기보다 '고용안정'에 초점을 맞췄으면 합니다. 교섭의 쟁점은 단순히 임금 인상이 아니라 사측의 미래차 생산계획에 맞춘 생산성 제고방안과 인력 재교육 등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기아 노조는 고용세습 유지, 정년 연장, 신규인원 충원 등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산업 패러다임 전환 흐름을 역행하는 태도라고 봅니다. 어쩌면 요구안이 수용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적 판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투표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노조는 여의도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정치 집단이니까요.
기아 노조가 낡은 과거에 사로잡혀 도행역시(倒行逆施)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전동화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고, 우리 산업의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인데요. 완성차4개사가 임단협 교섭을 마무리한 시점에서 기아 노조도 숲을 내다보는 대승적인 결단을 내릴 때입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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