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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K-콘텐츠 죽이는 '문산법' 졸속 입법은 안돼

오피니언 기자수첩

K-콘텐츠 죽이는 '문산법' 졸속 입법은 안돼

등록 2024.02.29 14:09

강준혁

  기자

reporter
지난해 3월 만화 '검정 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는 저작권을 놓고 출판사 측과 오랜 소송을 이어오다 지난해 3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해당 작품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통해 많은 팬덤을 형성해 온 터라, 이 작가의 선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해당 사건은 고 이우영, 이우진 작가(고인의 동생)와 출판사 형설앤 간의 불공정 계약이 단초가 됐다는 소식에 업계와 대중은 더욱 분노했다. 2007년 이후 작가 형제는 형설앤과 콘텐츠 확장을 이유로 여러 차례 사업권 설정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에는 '모든 작품 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권은 형설앤 대표 장모씨에게 양도한다' '원작물 및 그에 파생된 모든 이차적 사업권을 포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흔히 저작재산권의 매절계약이라고 불리는 불공정 계약이다.

매절계약은 출판사 등 유통 사업자가 저작권을 독점 양도받는 계약을 말한다. 사업자가 저작자에게 일정 금액만 지급하고 나면 향후 저작물 이용을 통해 얻는 수익을 모두 가져갈 수 있는 형태다.

이에 2020년 유정주 의원의 발의안과 2022년 김승수 의원 발의안을 반영해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하 문산법)을 만들었다. 다만 중복규제 가능성 등을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 이관돼 수정 중인 상태다.

법안은 문화유통사업자(플랫폼)가 문화상품판매자(창작자)에게 지식재산권 양도를 강제하거나 판매 촉진 비용을 전가하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 비용 지급 없이 수정이나 보완을 요구하거나 통상 수준보다 지나치게 낮은 대가를 책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 등으로 구성됐다.

업계에서는 해당 법안을 두고 '과잉 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규제 대상과 내용이 포괄적이고 시장 구조와 맞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피해는 신인 창작자들 사이에서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판매 촉진 비용 전가 금지 조항은 웹툰·웹소설의 대표적 비즈니스 모델인 '매열무'(매일 10시 무료), '기다무'(기다리면 무료) 등의 서비스를 제한한다. 두세 편을 무료로 제공해 이용자들 선택의 폭을 넓히는 시스템인데, 해당 서비스가 없어지면 플랫폼 입장에서는 작품을 전면 유료화할 수밖에 없다.

해당 서비스는 선택의 자유도를 높여 신인 작가에게 기회를 주는 효과도 있는데, 작품의 제목이나 소개가 좋으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한 편 정도 읽어보고 결제하는 것이 가능해서다. 당장 전면 유료화가 이뤄지면 결제해도 손해 볼 가능성이 적은 인기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편중될 가능성이 크다.

또 비용 지급 없이 수정이나 보완을 요구할 수 없어 플랫폼이나 회사 차원에서 창작자에게 수정을 요구하기 까다로워진다. 드라마 사업의 경우, 각본을 수정할 때마다 작가 측에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는데, 실제로 현업에서는 작품에 맞게 각본을 고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매번 고칠 때마다 비용이 들어간다면, 신인 작가의 각본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드라마 판에 익숙한 스타 작가를 선택하는 게 여러모로 합리적인 셈이다.

그러자 지난달 문체부는 해명 자료를 배포해 입장을 밝혔는데, 하위법령을 통해 보충하겠다는 설명이다. 상위법령에 오류가 있는데 하위법령에서 고치겠다고 하니 업계는 미칠 노릇이다. 일각에서는 헌법 일반 원칙인 "포괄위임입법금지원칙(법률의 명확성 원칙이 위임입법에 관하여 구체화된 특별 규정)"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논란이 불거진 지도 어느새 여러 달 지났지만, 아직까지 문체부의 수정안에 대한 답변은 없는 상황이다. 오는 4월 총선도 앞두고 있어 졸속 입법에 대한 우려도 쏟아진다. 콘텐츠 강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문체부는 빠르게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방향성을 수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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