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허들은 가처분 소송이다. MBK가 집중투표제 도입을 전제로 한 이사 선임을 막아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의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서다. 지난해 9월 MBK 연합의 공개매수 선언 이후 넉달째 이어지고 있는 경영권 분쟁에 마침표가 찍힐지 이목이 쏠린다.
최윤범 '승부수' 집중투표제···허 찔린 MBK·영풍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오는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임시주총을 열고 ▲집중투표제 도입 ▲이사 수 19인 상한 제한 ▲신규 사외이사 선임(최 회장 측 7인·MBK 측 14인) 등의 안건을 심의·표결한다.
핵심 안건은 '집중투표제'다. 이는 최윤범 회장의 '승부수'이기도 하다. MBK·영풍 연합군과의 경영권 싸움에서 지분경쟁에 밀리자 임시주총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비장의 카드인 셈이다. 현재 최 회장 측 지분율은 34.24%(의결권 기준 39%), MBK·영풍 연합 40.97%(의결권 기준 46.7%)이다. 통상 의결권이 많은 쪽 승리가 유력하나 최 회장은 집중투표제가 도입돼야 반전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지배주주가 회사를 완전히 장악하기가 어려워진다. 소액주주가 지지하는 독립적인 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도이다. 이사 선임 시 1주당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각 주주에게 부여한다. 예를 들어 10명의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주식 1주당 10개의 의결권이 주어진다. 주주는 이 의결권을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후보에게 몰아주는 것도 가능하다.
주식 지분에서 우위를 보이며 임시주총에서 승기를 잡을 것 같았던 MBK·영풍 측은 최 회장이 띄운 승부수에 허를 찔렸다. 이들은 자신들이 추천한 신규 이사를 대거 선임해 회사를 장악할 복안이었다. 집중투표제는 MBK·영풍 측에 변수다. "집중투표제가 고려아연 이사회 개편을 지연시키고 분쟁은 더욱 오래갈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법원에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을 통한 이사선임을 막기 위해 가처분 신청도 냈다.
여론전에도 나섰다. 최 회장의 동창이 대표로 있는 원아시아 펀드에 대한 거액 출자와 사업관련 성이 없는 SM엔터테인먼트 투자, 미국 저자폐기물 재활용업체 이그니오의 인수 의혹 등 최 회장을 겨냥한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국민연금, 고려아연 지지한다
현재까지 전개는 최 회장 측에 유리한 모습이다.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은 주주 별 최대 3%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3% 룰'이 적용된다.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 52명은 3% 미만의 지분을 보유해 온전히 표결할 수 있다. 반면 MBK·영풍 측은 법인과 개인이 '뭉텅이 지분'을 들고 있어 의결권이 크게 제약된다.
캐스팅보터로 꼽히는 국민연금도 최 회장 측에 힘을 보탰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는 집중투표제 도입에 찬성표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현 경영진 및 이사진 체제를 유지하며 일부 이사회의 다양성과 견제기능을 강화하는 게 회사의 중장기 발전과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글래스루이스와 ISS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와 서스틴베스트, 한국ESG연구소, 한국ESG평가원, 한국ESG기준원 등 국내외 6대 의결권 자문사들도 최근 의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이번 임시주총 주요 안건 중 하나인 이사 수 상한 설정에 대해 찬성을 권고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의결권 자문사들이 14명의 이사를 고려아연 이사회에 진입시키겠다는 MBK·영풍 측의 안건에 반대하며 적대적 M&A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공은 '가처분 소송·해외 연기금'으로
다만 가처분 소송 결과는 최 회장 측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MBK·영풍 측이 제기한 '의안상정금지 등 가처분' 첫 심문 기일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고려아연과 MBK·영풍 측으로부터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와 이를 전제로 한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심문을 종결했으나 선고 기일을 확정 짓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최대한 기록을 검토해 21일을 넘겨 결정한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과 MBK·영풍 측 의견이 극명히 갈리고 있어 신중히 판결을 내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MBK·영풍 측에 유리하게 흐르는 해외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이들의 지분은 7%에 달한다.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을 운용하는 노르웨이은행투자관리(NBIM)는 집중투표제 도입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NBIM은 고려아연 지분 1.04%를 보유하고 있다. NBIM 측은 "현 경영진의 재무적 성과 부진, 리스크 관리 실패, 주주에 대한 부적절한 대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했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과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도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에 반대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gamja@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