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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의 테크와 손끝

학교와 일터, 공공기관 이전, 무엇이 우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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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은행로에는 '산업은행 지방이전 결사반대'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는 산업은행 본점 직원들의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노동조합 조합원들만 집회에 참석했지만, 점차 비조합원들도 참여하는 구도로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산은은 부산 이전 관련해서 설명회를 갖는 등 소통을 시도하고 있지만, 상반기에만 직원 중 70명이 넘게 퇴사하는 등 조직 분위기는 좋지 않은 상황이다. 또 지난 9월 6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대기업 3~5곳,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와 서강대를 포함한 주요 대학, 특목고를 지방에 이전하겠다고 전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려면 청년의 집중이 완화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기업과 학교가 분산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특정되지 않은 대기업의 반응은 별 게 없지만, SKY+서강대의 학생들의 여론은 반대의 기류가 강하다. 지난 번 박순해 전 교육부총리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처럼 즉흥적이고 뒤집어 질 수 있는 공약에 불과하다고 보는 목소리도 커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존의 혁신도시 모델이 지역균형발전 관점에서 별로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혁신도시에 온갖 공공기관과 공기업, 각종 위원회를 보내봤지만 분산의 효과가 크지 않았다. 외려 세종으로 집결된 중앙 부처의 공무원들이 차근차근 정주율과 출산율을 높이면서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분산보다는 집중이 거시적인 분산을 가능하게 한다는 역설을 입증했다. 물론 지금까지는 나름의 성공을 겪은 세종 부처 공무원들의 자녀들이 10대 초반 '입시 리그'에 들어갈 즈음엔? 다시금 어떻게든 학군을 고려해 서울 수도권 이주를 하려할 지도 모른다. 대학에 갈 때, 졸업하고 취업할 때 목표가 서울 수도권이 될 것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볼 수 있다. 흔히 혁신이론가들이나 지리학자들은 지식공간으로서의 대학, 합의공간으로서의 거버넌스 협의체, 혁신의 주체로서의 산업계를 묶어 트리플 힐릭스(triple-helix) 혹은 삼중나선이라고 부른다. 달리 말하면 지방의 혁신을 위해선 대학, 공공기관, 기업의 상호작용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개의 주체 중 취약한 섹터를 채워주는 것이 중앙정부의 역할이다.

윤석열 정부의 방침은 지역균형발전 관점에서 트리플 힐릭스의 약한 주체의 보강 관점에서 논점을 잡고 토론할 수 있다. 먼저 대학의 경우 SKY+서강대 이전보다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경희대 김종영 교수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테제처럼 지역거점국립대 각각에 서울대에 투자하는 만큼의 예산을 투자해서 '거점별 서울대'를 만들어서 체제를 전환하는 게 더 효과적일 지도 모르겠다. 제조업 국가라는 정체성에 맞게 권역별 과학기술원에 대한 좀 더 큰 투자를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두번째로 대기업의 유치보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단계에서 '벤처 기업가' 정주영이나 김우중을 육성하듯이, 지역 산업계의 '제조 스타트업'을 '유니콘'까지 만드는 게 더 의미있는 국가의 일일 수도 있다. 영국 UCL대 마리아나 마주카토 교수는 실제로 벤처캐피털들이 스타트업 기업을 장기적 견지에서 잘 키우기보다 상장 과정에서 투자회수(exit)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며, 그냥 정부가 벤처캐피털의 역할을 '기업가적 국가entrepreneurial state'라는 다시 맡는 것이 21세기의 화두라고 주장한다. 셋째로 분권과 중앙의 조정 기능에 대한 화두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자치분권을 외치는 사람들은 하향식으로 중앙정부가 '중화학공업화'나 '경제개발계획' 같은 의제를 지방에 부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을 한다. 지금 지방의 경쟁력과 자치를 위해 필요한 것은 꼬리표 예산의 꼬리표를 떼는 것이란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 박정희 정권처럼 할 수는 없지만 자원투자의 중복으로 인한 낭비를 막기 위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중앙의 기획조정 기능이 지역의 혁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다. 지방자치제 25년 이상을 수행해본 경험들을 집약해야 할 거다. 어디에도 한편에서만 답을 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산업은행은 꼭 가야 하나? 여기에 '원격근무'와 'IT경영' 시절의 역설이 있다. 개인들은 스마트폰의 계좌이체 기능을, 기업들은 에스크로 같은 시스템을 통해 '실물 화폐'를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달리 말해 돈의 물질성과 장소성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업체들은 장소 때문에 발이 묶여 있다. 조선소들은 선수급환급보증(RG, refund guarantee)나 발급 받기 위해서 서울 여의도의 산업은행을 찾아야 한다. 산업은행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 산업구조조정을 수행하기 위해서 행원 들 몇 명이 '경영관리단' 등의 이름으로 서울에서 도남권 제조업체들에 파견을 가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가 퍼졌던 시절 줌(zoom)등을 통해서 화상회의를 진행했지만 다시 오프라인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이다. 상시적으로 대면업무를 하고, 주요 고객인 제조업 현장을 보면서 경영을 하는 게 맞다는 기조도 따져볼 수 있다. 장소의 역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학교, 일터, 공공기관 중 누가 우선이랄 것은 없다. 결국 함께여야 한다. 트리플 힐릭스의 각 축의 구색은 맞춰야 상호 성장이 가능하다. 특히 국민 대다수가 대학을 진학하는 상황에서 대학은 연구의 인프라와 기초교육의 인프라 역할 모두를 지역에서 담당하게 됐다. 대학 없이 발전했던 거제 같은 산업도시가 부딪히는 인재풀의 한계가 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중소도시에 대학을 지을 수 없다면, 일종의 '전략적 집중'이 필요해진다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선택 집중 분권 모두를 적절하게 고려해 지역의 혁신생태계가 강화되면서 지역균형발전이 진보하고 결과적으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4가지의 아젠다를 정부에서 던진 것은 '발제'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공장에 있는 혁신담당자들이 늘 말하듯 '실행'에 있다. 툭 던지는 것이 아니라 숙성시켜 우리 실정에 맞는 정책 패키지와 로드맵으로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정권의 공과 평가를 꼼꼼히 하고 '메가시티' 담론의 성과를 안고 다음의 단계까지 혁신논의 갈 수 있게 충분한 정책 토론이 벌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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