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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의 ESG 전망대

탄소 산업혁명에서, 저탄소 산업혁명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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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은 자본주의 쌍둥이가 태어난 해로 기록된다. 그해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을 출간했고, 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을 시장에 내놓으며 산업혁명의 시동을 걸었다. 자유시장경제의 학문적 뼈대와 토대, 후일 경제발전의 대도약을 견인했던 산업혁명의 원천기술이 같은 해, 같은 나라에서 탄생한 것을 우연의 일치로만 보고 지나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대런 애쓰모굴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이렇게 설명한다. 즉 자본주의 쌍둥이가 같은 나라, 같은 시기에 탄생한 배경에는 1688년 명예혁명과 이듬해인 1689년 권리장전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기념비적 사건을 통해 영국은 세계 최초로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확립할 수 있었다.

이후 영국은 입법권 및 재정에 대한 의회의 권한 확립, 보통법 체계 수립 및 사법체계의 효율성 제고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했다. 여기서 개인의 역동적 창발이 잉태, 발현되며 당시로선 전대미문의 대규모 투자가 확산되었고 산업혁명이라는 인류 역사의 신기원을 연 것이다.

따져 보면 증기기관의 최초 발명가는 영국인 제임스 와트가 아닌 프랑스인 드니 파팽이었다. 파팽은 1679년 증기찜통을 발명하고 이 기술에 피스톤 엔진을 장착해 1705년 세계 최초로 증기선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이 증기선으로 독일 풀다강에서 베저강까지 시험 항해까지 마쳤으나 사공 길드 조합들의 반발에 부딪혀 그 이상 발전시켜 나갈 수 없었다. 증기선이 뱃사공들의 일자리를 뺏아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후 1698년 토마스 세이버리가 영국 석탄광산에 증기기관을 최초로 실용화하기도 하였다. 연이어 토머스 뉴커먼이 세이버리의 제품을 보완해 1712년 증기엔진의 상용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역사는 이들보다 그 후세대인 1776년의 제임스 와트를 증기기관의 시원(始原)으로 기록한다.

파팽, 세이버리, 뉴커먼와 와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무엇으로 인해 역사는 와트만을 부각시켰을까. 앞선 이들의 증기기관이 스타트업 수준이었다면 제임스 와트의 그것은 앞선 기술력을 보완 개선하고 자본력을 통합하여 사업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기술자였던 제임스 와트가 석탄광산 사업가이자 투자자였던 매튜 볼턴을 만난 덕분이다. 또한 볼턴은 당시 의회에 대한 로비를 통해 와트의 증기기관의 특허 만료시한을 25년 추가로 연장하는데도 힘을 보탰다.

이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오늘날 21세기로 와보자. 최근 이집트에서 막을 내렸던 유엔기후변화협약 COP27을 통해 전 세계는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이 21세기 인류 최대 난제이자 절체절명의 당면 과제임을 재확인했다.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는 인류의 파국적 재앙을 막기 위해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마지노선임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으로부터 어떠한 시사점을 얻어 기후위기 해결의 세기적 신기원을 여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첫째, 탄소중립이라는 전 지구적 과제이자 메가 트렌드에서 파생될 수많은 기회들을 간파해 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른바 기업가정신의 관점이다. 탄소중립을 21세기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난해하고 불편한 숙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거대한 시장 진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통한 신사업의 기회로 읽어내는 제임스 와트형 기업가들을 키우고 찾아내야 한다.

최근 발간된 GFANZ(넷제로 달성을 위한 글래스고 금융연합)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109조 달러에서 275조 달러 규모의 천문학적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가히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숨은 기회를 찾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들어낼 혁신적 기업가들을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둘째, 정부 주도가 아닌 시장이 이끄는 저탄소 산업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관주도 개발경제의 DNA가 뿌리 박혀 있다. 과거 1,2,3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던 경험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에 펼쳐질 저탄소 산업혁명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모범답안이나 앞선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는 정부가 나침반이나 지도를 제시하며 기업이나 산업을 지름길로 이끌 수 없다. 와트와 같이, 파팽, 세이버리, 뉴커먼의 기술들을 벤치마크하고,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조지프 블랙의 과학 원리와 당대 최고의 기계 기술자인 존 윌킨슨의 기술을 융복합해서 전혀 새로운 기술을 제시하려면 시장의 강력한 지원이 따라야 한다.

셋째, 기술과 투자가 긴밀히 만날 수 있는 자본시장 및 금융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주지하듯 실물과 금융은 수레의 두 바퀴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작동하지 못하면 수레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와트가 투자자인 볼턴을 만나 증기기관의 상용화에 성공했듯이 패러다임을 혁신하는 기술에는 반드시 장기 투자가 동행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장기 운용기금을 보유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그들의 ESG투자를 주식 채권 등 전통자산군에서 대체투자 영역으로도 확장해 저탄소 테크놀로지, 탄소중립 관련 프로젝트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 이러할 때 민간투자부문의 저탄소 투자도 활성화되어 저탄소 산업혁명이라는 수레의 두 바퀴가 완성될 수 있다.

넷째, 정부나 국회는 관련 제도적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18세기 볼턴과 와트의 의견을 경청한 영국 의회가 특허권 연장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듯이 21세기 저탄소 산업혁명의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를 개선하고, 기업가정신이 싹틀 수 있는 공정한 시장의 플레이 그라운드를 조성하며, 자본과 기술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자본시장을 열어야 한다.

무엇보다 독일 사공 길드조합의 저항사건에서 레슨을 얻어, 탄소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저탄소 산업으로의 일자리 이동과 사회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는 이른바 '공정한 전환(Just Transition)'의 문제도 챙겨야 한다. 아울러 정치는 기득권과 신기술·신산업간 이해 충돌을 조정해내는 역할도 맡아야 할 것이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은 양극화와 인간소외의 문제는 차치하고 인류에게 물질적 경제적 풍요를 분명 선사했다. 그로 인해 인류는 빈곤, 건강, 삶의 질 개선의 문제를 일정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석 연료의 범용화를 통해 기후위기라는 절체절명의 난제를 후세대에게 떠넘겼다. 후세의 문제는 도외시하고 당대의 이기적 욕구와 필요만 챙긴 후과(後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후세대의 필요와 이익도 함께 고려하면서 현재 세대의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혁명이자 저탄소 혁명이기도 하다. 탄소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못했던 18세기로부터는 반면교사(反面敎師)를, 와트의 창발과 융복합, 영국의 자유시장경제로부터는 정면교사(正面敎師)를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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