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우리은행 채용비리 의혹, 시중은행 전수조사로 번져금융지주 회장·은행장 줄줄이 고발 조치···재판 현재진행형취약한 시스템 조사 필요하나···개인정보 파악에 어려움 존재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우리은행 외 국내 은행들의 고액여신 등 리스크에 대해 점검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금융권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부당대출 문제로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이 불씨가 언제 다른 은행으로 옮겨 붙을지 알 수 없게 됐다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6년 전 우리은행에서 시작된 채용비리 사태와 이번 부당대출 사태가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당시 우리은행에서 출발한 채용비리 의혹은 5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으로 삽시간에 번지면서 금융권을 통째로 흔들어놨다.
우리은행發 채용비리 아직까지 금융권 리스크로 존재
2017년 벌어진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는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조사가 고강도로 이뤄지며 최고경영자(CEO) 사법리스크와 더불어 일부 은행에서는 경영 공백 사태로 이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2017년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우리은행에서 대규모 채용비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시작됐다. 금융감독원은 곧장 우리은행의 채용비리 조사에 나섰고 자체감찰 결과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당시 은행장을 맡았던 이광구 전 행장은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 지 한 달 만에 자진 사퇴했다.
이후 금감원이 시중은행 전수조사에 나서며 KB국민은행, 하나은행, 광주은행, 부산은행, 대구은행(현 iM뱅크) 등에서도 채용비리가 잇달아 적발됐다. 검찰은 각 금융사의 본사 압수수색은 물론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 주요 임원진의 자택 압수수색까지 단행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의 채용 비리 의혹과 얽힌 김용환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2017년 10월 농협금융지주 본사와 자택 압수수색을 당했다. KB금융지주도 2018년 1월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졌으며 본점이 압수수색을 받았다.
하나금융지주 또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전 회장 등이 채용비리 정황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하나은행을 여러 차례 압수수색 했으나 김 회장은 2018년 6월 채용비리 의혹이 제기된지 5개월 만에 불기소 처분을 받아 의혹을 벗었다.
2018년 4월에는 채용비리에 연루된 박재경 전 BNK금융지주 사장, 강동주 전 BNK저축은행 대표가 조직 안정을 위해 자진사퇴를 결정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5대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늦은 2018년 4월 전·현직 임원 자녀 특혜 채용 이슈가 불거졌다. 금감원이 신한금융 계열사에서 총 22건의 특혜채용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히며 2018년 6월 검찰의 신한은행 본사 압수수색과 더불어 당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현 은행연합회 회장)에 대한 검찰 조사가 본격화됐다. 조 회장은 4년 뒤인 2022년 6월 채용비리 최종 무죄를 선고받으며 혐의를 벗었다.
"우리은행 만의 문제 아닐 것"vs"친인척 조사 어려워"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우리은행의 부당대출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 만큼 채용비리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은행에서 '제2의 손태승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 4일에도 우리금융 현 경영진의 손태승 부당대출 사태 대응 방식에 불만을 쏟아냈다. 이 원장은 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임 회장 관련 대출이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을 발본색원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끼리끼리, 나눠먹기 문화가 팽배해 있는데 조직 개혁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금융에서 벌어진 부당대출 문제로 금융당국에서 타 금융지주와 은행도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향후 우리금융에서 진행하는 정기검사 결과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금융감독원의 제1금융권 압박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만큼 우리은행의 사태가 타행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며 "우리은행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시스템적인 취약점도 존재하는 만큼 조사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단 문제는 실제로 전임 회장이나 은행장, 고위 임원들의 친인척을 파악해 특혜대출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각 은행별로 자체적으로 친인척 부당대출 여부를 확인하려 해도 제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이 마땅치 않다"면서 "직계가족 외에 친인척 정보를 회사가 파악하고 있을 수도 없는 만큼 친인척 대출의 경우 원칙적으로 심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마땅한 방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또한 원론적으로는 친인척 부당대출 문제를 우리은행 외에 시중은행 전수조사로 펼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제보를 통해 조사가 시작됐으나 금감원이 직접 전수조사를 통해 특혜대출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개인정보법 때문에 금감원이 금융사 임직원의 친인척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직계 가족도 금융사 인사카드에는 명시돼있으나 그 정보는 인사 시에만 활용 가능한 정보다. 만약 대출 관련 조사를 진행하려면 개별 동의를 다 받아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은행권 전수조사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시중은행의 감사를 통해 부당여신 의혹을 전반적으로 들여다 본 이후 의심 정황이 발생하면 검찰에 고발조치하는 형태로 진행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2018년 이후 국내 굴지의 금융지주 CEO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채용비리와 비슷한 절차를 밟아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여신 운영에 대한 리스크가 불거진 상황에서 우리은행 외에도 다른 은행들도 들여다 볼 예정'이라고 밝힌 것은 부당대출 문제를 우리은행에 국한하지 않고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면서 "원칙적으로는 여신을 살펴보기 어렵기는 하지만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이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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