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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주의와 같은 한 나라의 일방적 조치가 종국엔 자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국제 경제에서 상호 의존성을 무시한 정책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성장과 번영을 저해한다는 교훈이 담겼다. 유시민 작가는 저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 193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공황을 조명하며 이 같이 진단했다.
'총수요'의 역할을 중시한 케인스 경제학적 관점의 해석이다. 풀어보면 이렇다. 가령 A국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자국 기업에만 보조금을 지급해 다른 나라의 수출을 억제하면, A국의 수입이 줄고, 무역 상대국의 경제가 위축된다. 그러나 이는 상대국의 소비를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A국의 수출까지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낳는다.
대공황 당시의 모습이 그랬다. 미국은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시행해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겼다. 자신들의 농업과 산업을 보호함으로써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유럽 등 다른 나라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똑같이 관세를 올리고 무역 장벽을 높여 맞불을 놨다. 결국 전세계 교역 규모는 급격히 작아졌고, 국제적 총수요가 감소하면서 실업률은 폭등했다. 경기 침체는 더욱 깊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쪽은 미국이었다.
책에 수록된 방대한 서사 중 유독 대공황 파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이유는 100년이 흐른 지금 똑같은 장면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똑같이 출발점은 미국이다. 신냉전 속 다시 문을 연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로 주변국을 압박하고 있다. 가장 먼저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10% 더 물린 데 이어 전세계에서 들여오는 철강·알루미늄에도 25%씩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했다. 나아가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 등을 놓고도 1개월 안에 구체적인 방침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엔 비상이 걸렸다.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트럼프발(發) 무역 전쟁이 현실화한 데다, 타깃에 오른 품목 중 어느 하나 국내 산업과 떼어낼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컨트롤타워 부재에 한 마디도 못하는 정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제계는 작은 실마리라도 잡기 위해 서둘러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트럼프 행정부가 초반부터 강수를 두는 데는 나름의 입장이 있다고 한다. 연 1조달러에 육박하는 무역적자를 줄이고 외국산 저가 제품으로부터 제조업과 일자리를 지키려면 부득이 관세를 올려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면엔 중국과의 패권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주한미군 방위비와 같은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 카드로 쓰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어떤 것이든 온전히 동의하긴 어렵다. 미국이 과연 손해만 봤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앞서는 탓이다. 무역적자 규모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되는 부분은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점이다. 국제 사회에서 기축통화국이 자국 화폐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면 그만큼 돈을 널리 공급해야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수입에 따른 대규모 지출은 오히려 미국이 세계적으로 장악력을 키우는 지렛대가 됐다. 유출된 달러는 미국 국채와 주식, 부동산 등 투자로 되돌아온다. 천문학적 손실에도 미국 경제가 침몰하지 않는 배경이다. 그리고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업이 현지에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창출했는지··· 말끝마다 '빼앗겼다'는 트럼프식 화법에 물음표가 붙는다.
미국이 목적지에 도달할지 여부도 낙관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일시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기업의 생산 비용이 증가해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물가 부담이 가중되면 가계 소비는 위축되고 그만큼 경기는 뒷걸음질 친다.
더 큰 문제는 이번에도 갈등은 불가피하다는 데 있다. 중국은 미국을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한편, 석탄과 석유 등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10~15% 관세를 추가로 붙였다. EU의 경우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자 여러 협상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결렬 시 강경 대응이 필요하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앞서 소개한 1930년대의 분위기와 유사하다.
미국의 보호무역이 정말로 대공황의 전조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이에 우리가 이미 기나긴 침체기에 빠진 것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모두 아니길 바란다. 다만 미국이 100년 전 실패한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공생·공영이란 인류 보편적 가치는 사라지고 전 세계가 실험 대상이 됐다는 데 강한 아쉬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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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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