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반도체 사업을 훔쳐 갔다"AI 시장 중심,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러브콜장기적 관점서 국내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
다만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등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점차 반도체 사업을 잃었고 대만이 우리에게서 훔쳐갔다"며 "이제 거의 전적으로 대만에 있으며 약간은 한국에 있지만 대부분 대만에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반도체 사업과 관련해 대만을 언급한 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공개석상에서 한국을 함께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트럼프가 K-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추가 투자를 유치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앞서 미국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각각 370억달러,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가 최근 미국에 1000억달러를 추가 투자를 결정했고 이처럼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게도 기존보다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하려는 것 아니겠냐는 풀이다. TSMC의 미국 현지 투자액은 이번 투자 결정 건까지 총 1650억달러에 달한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추가 투자 유치가 주된 목적일 것"이라며 "미국은 반도체 설계나 소프트웨어 기술은 세계 최고이지만 제조 분야는 아직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에 파운드리는 TSMC,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통해 생산 라인을 증설하거나 신규 확대를 하면 미국은 향후 AI 반도체 시장에서 전 세계 반도체 패권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추가 투자를 감행하더라도 보조금 지원은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전 행정부는 미국 투자 유치를 위해 보조금 등을 지원해주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부과를 카드로 꺼내들었다. TSMC의 이번 추가 투자 결정도 관세를 무기 삼아 보조금 등 지원 없이 얻어낸 성과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행정부에서 미국에 대한 반도체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기업들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반도체법과 관련해 "엄청난 돈 낭비"라고 비판했다. 반도체법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이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에 대한 추가 투자시 새로운 보조금 지원을 기대하기는커녕 기존에 약속 받았던 보조금 지원 여부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문제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압박을 외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알루미늄 제품들에 이어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도 예고했다.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품목이기도 한 반도체 역시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이들의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최근 반도체 시장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되살아났다. 특히 그중에서도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HBM 등 AI 메모리에 대한 러브콜이 이어지면서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북미 매출은 급증했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미국 오스틴 반도체 생산법인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각각 22%, 288%씩 늘었다. SK하이닉스의 아메리카 법인 매출도 1년 전에 비해 167%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28% 가량 커졌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에 대한 추가 투자 결정의 경우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이 교수는 "AI 반도체 수요는 미국 중심이라 확실한 수요가 있다면 투자하는 것도 기업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AI 반도체 핵심인 HBM은 범용 메모리처럼 재고를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고객사의 요청이 있어야 하는 특성이 있다. 이에 미국에 대한 추가 투자 전제 조건도 결국 고객,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충분한 수요를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 진출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국에 대한 투자로 국내 투자는 소홀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미국이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면 국내가 아닌 미국에만 득이 되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웨이 정단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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