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40여 년 투자 경력의 한 개인투자자는 지난 4년여가 투자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2021년 팬데믹 당시 코스피가 3200선을 뚫고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자 환호하며 투자를 늘렸다가,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원본의 90% 가까이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호황장에서는 투자 여력이 없어 방관만 하고 있으며, 가슴이 아파 주식 뉴스조차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이 이제까지 한국 시장의 수많은 투자자들이 겪었던 불편한 진실이다. 박스피 장세보다 투자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사상 최고치 기록 후 장기 하락장이다. 특히 시장 제도나 기업의 질적 변화 없이 풍부한 유동성으로 기록된 최고 지수는 반드시 상응하는 하락 후유증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정량적 목표보다 질적 조건이 우선이다
따라서 코스피 5000이라는 정량적 목표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조건들이 갖춰지면서 지수가 상승하느냐"는 질적 측면이다. 정치인, 관련 정책 담당자, 투자자 모두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따라서 자본시장 제도 개선, 기업 지배구조 및 펀더멘털 강화, 자본시장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무관용 단죄 등 선진적 개혁 조치들이 동반되면서 그에 비례해 지수가 상승해야 한다. 시장에는 항상 버블과 역버블이 불가피하게 발생하지만, 제도와 정책의 타이밍과 개혁 강도에 따라서는 그 후유증과 변동성도 상대적으로 최소화할 수 있다.
리서치의 독립성 없이 건강한 시장은 불가능하다
미시적 측면이지만 증권사 리서치의 독립성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애널리스트들의 기업 분석 보고서를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국내 증권사들의 수입원은 크게 위탁수수료, IB업무, 자기자본투자, 자산관리로 나뉘는데, 최근 IB업무 비중이 급격히 늘어 가장 큰 수입원이 되었다. 이는 증권사들이 기업을 상대로 영업해서 돈을 가장 많이 번다는 뜻이고, 달리 해석하면 증권사의 기업 의존도가 강화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증권사들이 그들의 주요 고객인 기업들을 과연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증권사에 근무했고 오랫동안 셀사이드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를 봐온 경험상, 나는 대부분의 보고서를 신뢰하지 않는다. 경험칙상 거의 대부분 틀리거나, 한 번 맞으면 그다음에는 틀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기업 실적 예측의 난해함 때문이고, 둘째는 분석 대상 기업들과의 현재적·잠재적 거래 관계로 인한 '독립성' 이슈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증권사 보고서에서 'BUY'나 'HOLD' 의견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SELL' 의견을 담은 보고서는 찾을 수 없다. 'SELL' 의견을 제시하면 해당 기업 탐방에 제약을 받고, 이는 애널리스트 업무 수행의 제약으로 이어진다. 증권사 리서치 센터를 '대기업 IR 여의도 출장소'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리서치는 투자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리서치는 자본시장의 뿌리산업이라고 볼 수 있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듯, 리서치 산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본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는 없다. 정책당국은 이 점을 반드시 유념해 리서치의 독립성 개선과 관련한 보완책을 제시해야 한다.
금융교육과 재테크 교육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인투자자 대상의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금융교육이 시급하다. '금융교육'과 '재테크 교육'은 완전히 다른데,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은 '주식 매매 기법', '기업 분석', '매크로 분석' 등을 '금융교육'으로 착각하고 있다. 대다수 증권사 PB들이나 관련 유튜버들도 그렇게 안내하고 있다.
물론 위험자산인 주식에 투자하기 위해 자산 평가, 시장 분석 역량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금융 리터러시의 일부일 뿐이며 그 본령은 아니다. 금융교육의 본질은 개인의 생애주기와 재무 목표에 맞춘 자산 배분, 리스크 관리를 통해 은퇴 후에도 지속 가능한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재테크 중심 교육은 단기 시장 변동성에 민감한 투자 행동을 조장하기 쉬우며, 비합리적 투자 결정을 유발할 위험도 크다. 과도한 레버리지, 마켓 플레이, 추세 추종 매매 유도 등이 그것이다. 체계적 금융교육이란 자산배분의 조정, 리스크 인지 및 대응까지 포괄하며 은퇴 후 소득 흐름 및 보유 자산 수준까지 염두에 두는 장기적 자금 설계여야 한다.
이카루스의 날개가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식시장은, 상승기에는 알라딘의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 같지만 하락으로 반전되면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추락하는 곳이다. 그때는 자비란 전혀 없는 무자비한 곳이다.
나는 오랜 기간 자본시장에서 일하면서 주식투자 실패로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가정이 파괴되면서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들 대부분은 몇 번 환상적인 양탄자를 탔으나 그것이 결국 그들을 불행한 삶으로 인도했다.
따라서 이번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코스피 5000이 투자자들에게 결국 추락할 이카루스의 날개를 선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상누각, 바벨탑을 쌓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점을 유념하면서 향후 정권 5년 내내 밀도 있고 일관성 있게, 그리고 디테일까지 잘 챙기면서 자본시장을 근원적으로, 또한 질적으로 변혁시켜 주길 바란다. 코스피 5000은 숫자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 그 자체여야 한다.

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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