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금리차 축소·무역흑자에도 원화 약세 지속한미 관세 협상·엔저·미중 갈등 등 지역 변수 영향통화정책 대응 여력 좁아져···"실물경제 회복 관건"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23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40원을 넘어섰고, 종가는 1439.60원에 마감했다. 이는 올해 4월 28일(1442.80원) 이후 최고치다.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첫 4000선을 돌파한 27일에는 전 거래일보다 0.4원 내린 1436.7원에 개장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미 금리차 축소와 무역수지 흑자행진에도 원화 약세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통상 금리차 축소와 증시 활황은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지역적 불확실성에 의해 상쇄된 상황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를 동결한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원·달러 환율의 상승 요인의 약 75%가 관세 협상 지연, 일본의 재정 확대, 미·중 갈등 등 동아시아 지역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대외 불확실성 높아진 외환시장···자본유출 역풍까지
원·달러 환율의 가장 큰 변수는 미·중 관세 협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25% 상호관세 부과를 통보하며 관세 압박에 나서자 원화는 곧바로 약세 국면으로 전환됐다. 미·중 간 관세 협상도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외환시장 내 불안 심리가 환율 상단을 끌어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7월 이후 관세 불확실성이 원화 약세를 이끌었다면 이달 들어 환율 상승세를 가속한 요인은 일본발 엔저 흐름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예고했다. 이에 시장은 '사나에노믹스'라며 아베 전 총리의 '아베노믹스'와 유사한 인위적 엔저 정책으로 받아들였다.
일본과 교역 구조가 밀접한 한국은 엔화 약세 때마다 환율 상방 압력이 커지는 구조여서 최근 급격한 원화 약세 역시 일본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다만 현재 일본은 과거와 같은 대규모 재정 확대는 쉽지 않아 실제 정책 발표 이후 시장 반응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관세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원·달러 환율이 1400원 밑으로 내려가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올 들어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 규모가 외국인의 국내투자 규모를 4배 이상 웃돌며 외화유출 압력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금리와 경상수지 같은 기초 여건이 개선돼도 외국인 자금 유입보다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훨씬 큰 상황에서는 원화 강세로 전환되기 어렵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보다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1달러당 1400원을 넘는 환율은 불안감을 자극하는데, 외환위기를 겪었고 주요 위기국면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며 "최근 환율이 전통적으로 환율을 결정하던 금리차 흐름이나 경제 펀더멘탈 추이보다는 매우 유동적이고 불확실성이 큰 요인들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28일 APEC회의에 맞춰 우리 경제의 부담을 크게 완화하는 수준에서 협상이 타결되길 간절히 바란다"면서도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를 보면 설익은 기대보다는 이 불확실성을 견디며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협상 타결에 따른 환율 안정을 마냥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통화정책으론 한계···"수출·경상수지 개선돼야"
이에 정부는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외환시장 구두개입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미·중 무역갈등, 프랑스·일본 등의 재정·정치 리스크 등으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외환시장 변동성이 지속되고 있다"며 "국제금융시장 동향 등 대외 여건을 24시간 모니터링하며 필요시 적기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외환당국은 앞서 지난 13일에도 원·달러 환율이 1430원을 돌파하자 즉각 메시지를 냈다. 당시 기재부와 한국은행은 "최근 원화 변동성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시장의 쏠림 가능성에 경계감을 가지고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선 한은이 환율 급등 국면에서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사실상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리 인하기에 금리를 올려 환율을 안정시키기도 어렵고, 정부의 구두개입 역시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한미 관세 협상 결과와 수출 실적에 따라 환율의 향방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환율을 잡으려면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데, 지금은 내릴지 멈출지만 논의되는 상황이라 한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본다"며 "환율의 향방은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과 3분기 수출 실적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어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면 곧바로 환율조작국 시비가 붙기 때문에 기재부의 '적기 대응' 발언은 국민을 향한 립서비스에 가깝다"며 "실질적인 환율 안정을 위해서는 시장 개입이 아닌 수출과 경상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실물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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