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듯 한국경제의 글로벌 해외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매우 높고, 국내 ESG 관심도와 수준 역시 글로벌 ESG의 그것들과 궤를 같이 하며 발전하는 까닭에 바깥에서 안으로의 관점에서 우리의 대응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SG를 둘러싼 세계경제 지형도
세계적 권위의 '콜린스 사전'은 '영구적 위기(Permacrisis)'를 2022년의 단어로 선정·발표한 바 있다. 이 '영구적 위기'는 2023년까지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 단어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첫 번째 배경에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발한 가장 큰 전쟁이며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가장 위협적으로 핵전쟁 발발 가능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여기서 촉발된 에너지 가격 앙등은 지난 198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야기했고 이에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과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한 거시적 처방들을 내리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국경은 불가침이어야 하고 핵무기는 사용되지 않아야 하며 인플레이션은 낮게 유지되고 선진국의 밤은 항상 밝아야 한다는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가정들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더해 중국 시진핑 주석은 '서구 질서의 기반이 되는 보편적 가치들'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발전해온 미국과 중국 간 협력적 관계는 이미 분리적 관계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치솟는 에너지 가격은 친환경 정책에 우호적이었던 유럽의 정치인들마저 석탄화력 발전의 필요성과 재가동의 불가피성을 수용하는 실정이다. 이제 '에너지 전환'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Security)와 경제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도 함께 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난해와 같은 에너지 가격 급등을 막지 못한다면 두 자리 수의 인플레이션과 이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행진은 불가피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경기침체의 가속화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중국 국내 사정도 예사롭지 않다. 제로 코로나 정책은 수정됐지만 그들은 코로나와의 공존을 미룬 결과 비싼 대가를 치를지도 모른다. 중국 당국은 인프라 투자와 소비 진작 대책 등을 통해 경기 부양을 시도하고 있지만 급작스런 정책 전환으로 인한 감염 폭발을 불러와 결과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모두 떨어뜨리고 있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악화일로에 있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당초 정부 목표인 5.5%를 크게 밑도는 2~3%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지난해 10월 집권 3기에 접어든 시진핑은 당대회에서 향후 '위험한 폭풍'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며 대만에 대한 침략 가능성까지 포함한 총체적 도발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미국경제의 펀더멘털은 상대적으로 유럽이나 중국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연준의 매파적 금리 인상은 경기침체를 불러올 것이지만 여전히 높은 고용률과 풍부한 가계 저축률이 미국 경제를 힘겹게 지탱할 것이다.
높은 휘발유 가격이 물가를 자극할지라도 미국은 대규모 에너지 생산국이므로 여타국들에 비해 그 충격은 덜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이러한 경제적 강점은 오히려 여타 국가들에게 문제를 전가할 가능성이 높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릴 것이고 이것은 강 달러 국면을 지속시킬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민주당과 공화당 간 분열로 입법 교착상태가 발생해 결과적으로 워싱턴의 정치 상황이 미국 경제 전체에 해악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약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반면 대만에 대한 관여 수준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로 인해 푸틴은 보다 대담한 행보를 보일 것이고 시진핑은 분노할 것이다.
한편 에너지 가격 급등은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은 "청정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시킬 에너지 역사의 변곡점이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앞서의 위기적 경제상황은 화석연료의 중요성에 대한 현실주의를 더욱 부추길 것이며 그 절충적 대안으로서 천연가스와 원자력 발전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 있다. 이들 대안들은 미래 친환경 에너지와의 가교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목해야 할 ESG 이슈들
앞서 언급했듯 세계 경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1980년대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와 경제적 불확실성의 국면을 통과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투자업계와 기업들은 '지속 가능성'보다 '생존 가능성'으로 경영의 방점을 옮기면서 ESG는 전환기적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아울러 지난해 7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ESG 비판과 유사한 비판들도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ESG 진영의 자기검열을 강화함으로써 논리적 정합성이나 이론적 정교함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은 ESG가 분명 장기적 과제이자 목표지만 기업이나 투자자에게 단기적으로도 효능감을 줄 수 있는지 여부도 예의주시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23년은 ESG 주류화로 이행함에 있어서 그 변곡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올해 주목해야 할 여섯 가지 ESG이슈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첫째, ESG관련 공시 표준들이 등장할 것이다. 지난해 12월 몬트리올에서 끝난 '유엔 생물다양성 컨퍼런스(COP 15)'에서 에마뉴엘 파버 ISSB 의장은 수개월 내에 ESG정보공시 가이드라인의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ISSB는 지난해 3월 지속가능성 공시를 위한 최초의 기준인 'S1(일반 요구사항)'과 'S2 (기후 관련 공시)'의 공개초안을 발표했고, 이후 7월 전 세계 이해관계자로부터 의견을 수렴한 이래 현재 막바지 작업 중에 있다.
아울러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은 '기업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 최종안을 올해 4월 발표할 예정이다. 이는 특히 공급망상에서의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도 오는 4월 '기후변화 리스크와 그 영향에 대한 상장기업 공시'를 확대하는 규정의 최종안을 발표할 것이다.
그밖에도 싱가포르, 뉴질랜드, 스위스 등 여러 국가들에서도 '기후관련 재무정보 공시 태스크포스(TCFD)' 방법론을 차용한 공시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에 있다.
위의 정보공개 표준 제정 작업은 ESG이슈들에 대한 투명하고 일관성 있는 정보공개를 통해 해당 주체들의 ESG성과에 대한 자기규율성을 강화함으로써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ESG워싱(위장된 ESG성과)'을 규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폭넓은 지지와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공시 표준 제정의 디테일로 들어가면 간단치 않은 문제점과 난관들이 예상된다. 즉 나라와 산업마다 다르게 내재하는 고유성과 특수성을 아우를 수 있는 단일한 표준을 제정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뜻이다.
따라서 위의 표준안들이 연내에 공표된다고 하더라도 이후 해당국에서의 위법성 논쟁과 특정 이해관계자나 일부 지역에서의 반발 등 상당한 후폭풍도 예상된다.
둘째, 에너지 안보 및 에너지 경제성 이슈로 인해 기업이나 투자자들의 기후전략이 후퇴할 개연성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석탄화력 발전의 중요성이 높아졌고 일부 국가에서는 원자력 발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올해도 이러한 추세가 이어져 국가적으로나 기업의 입장에서나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문제가 가장 긴급한 과제가 될 것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신규투자가 증가하고 석탄화력 발전의 폐지가 지연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탈탄소계획의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기업 측면에서는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조달하기 위한 투자가 확대돼 단기적 비용 상승요인이 되고 이로 인해 이익률이 낮아지는 일들이 발생할 것이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그간의 ESG친화적인 자산배분에서 화석연료나 그와 관련된 자산·기업들에 대한 자산 배분을 늘리는 전략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기업과 투자자들은 ESG 관련 소송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에는 ESG워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특히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ESG 워싱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 필요성이 제기됐다. 독일 자산운용사인 DWS 사례는 이러한 움직임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즉 DWS는 그들 투자상품의 ESG 요소가 과장됐다는 의혹으로 독일과 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각각 조사를 받았다.
이것은 중요한 반면교사가 됐다. 미국과 EU 규제 당국에서는 펀드 설명서와 실제 운용상의 일치 여부를 투명하게 공시토록 하는 규정의 도입을 추진 중에 있다. 이와 관련해 EU에서는 지속 가능한 금융 공시 규제(SFDR)가 이미 도입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금융부문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업부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H&M, 코카콜라, KLM네덜란드항공 등은 모두 지난해 그린워싱 혐의로 소비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한편 이러한 소송 위험을 낮추거나 피하기 위해 기업이나 투자기관들이 'ESG워싱'에서 'ESG허싱(ESGhushing, ESG활동에 대해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는 태도)'으로 그 스탠스를 바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넷째, 기업은 그들 공급망상의 안전과 인권경영 수준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2023년은 기업이 공급망상 근로자들의 안전 문제와 인권 경영 이슈들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올해 1월 독일은 공급망 실사법을 발효해 대상 기업들로 하여금 공급망 상에서의 인권보호, 작업장 안전 및 환경경영의 위험수준을 실사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미국은 생산품의 전부 혹은 일부라도 강제노동을 통해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 세관과 국경 경비대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500건의 수입품에 대해 조사한 결과 그중 55건에 대해 수입 금지 명령을 내린 바 있다.
다섯째, 각국 중앙은행들의 기후위기 감시 수준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기후위기로부터 금융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과 규제당국의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올해 연준의 '기후원칙 초안'이 등장하면서 정치적 논쟁이 예상된다. 연준이 제안한 이 감독지침에 따라 자산 1000억달러 이상 은행은 연례감사는 물론이고 스트레스 테스트와 유동성 완충 장치에 기후변화 위험을 통합해야 한다.
EU 의회 경제통화위원회에서도 은행들로 하여금 오염자산에 대해 추가적 자본을 요구할 것인지를 놓고 올해 말 투표할 예정이다. 마사요시 아마미야 일본은행 부총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은행의 가장 핵심적인 임무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여섯째, 미국 공화당의 '反 ESG운동'이 지속될 것이다. 1년 전만 해도 ESG에 대한 반발은 거의 없었으나 기업들에 대한 기후위험 변수 공개에 대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요구가 발표되자 공화당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ESG에 대한 반발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24개주에 국한되어 있다.
올해에도 ESG에 대한 공화당의 비판과 반발은 계속 될 것이다. 플로리다주 신임 상원의장은 올해 12월 '반 ESG법안'을 제정할 것이라고 말했고 론 데산티스 플로리다주 지사 역시 '반 ESG정책'을 내세우며 대선 출마 레이스에 합류할 것이다.
하지만 의회를 주 무대로 하는 공화당의 ESG비판은 ESG발전에 있어서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하원을 장악하고 있지만 그들이 추진하는 '반 ESG법안'들은 민주 51석, 공화 49석으로 이뤄진 상원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앞서 언급했듯 올해 세계경제의 거시변수들은 ESG에 우호적 방향보다는 그 반대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복합위기적 경기침체 상황 속에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생존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의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전자의 방향으로 부등호를 치고 자원 배분과 정책 결정을 해나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살아남지 못하면, 아무리 대의명분 있는 정책과 전략도 미래에는 폐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존의 문제가 중시되면 의당 ESG에 대한 비판론이 지속적으로 등장해 그 뿌리마저 흔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회의론의 등장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ESG 발전에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즉 역사를 돌아보면 하나의 담론이나 분야가 주류 무대에 자리 잡기까지는 다양한 비판과 허들들을 통과해야 했다. 무조건 '직진 우상향'하지는 않았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우상향할지라도 단기적 국면마다 상승, 하락, 조정의 파동을 형성하면서, 소수설에서 다수설로, 더 나아가 하나의 보편적 담론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통과의례처럼 겪는 수많은 비판들은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해당 분야의 이론적 완결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높이는데 오히려 순기능으로 작용한다고 믿는다. ESG분야 역시 올해 내내 그러한 과정을 통과의례처럼 경험할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ESG는 경영이나 투자에서 주류의 담론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것으로 믿는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저탄소 국제사회로의 진전은 예정된 미래인 까닭이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이미 세계 136개 국가들이 국제사회에 탄소중립을 공식 선언했고 이중 66개국은 탄소중립 목표연도를 설정한 바 있다.
둘째, SNS 등 다양한 테크놀로지와 플랫폼의 발전과 확산으로 인해 이제 이해관계자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업의 대응 필요성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해졌다.
셋째, 기업가치 형성에 있어서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유형자산의 그것을 훨씬 상회한다. 예컨대 S&P500 기업에 있어서 무형자산는 기업가치의 약 90%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무형자산과 비재무적 요소들은 ESG요소들과 매우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기업 가치의 90%를 차지하는 비재무적 부분에 대한 경영계와 투자업계의 관심이 지속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기업 및 투자업계는 올해 예상되는 ESG 조정기 혹은 속도 조절의 국면에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차분히 미래를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기업 및 금융기관들은 곧 다가올 의무적 ESG정보공개에 대비해 각자의 ESG 정책 수립, 관련 프로그램 고도화 및 데이터의 정합성을 제고하고 그것을 통합, 정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의 ESG홍보가 자칫 ESG워싱으로 과장되지 않도록 자기점검을 강화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과도한 ESG워싱에 대한 소비자 및 투자자들로부터의 소송이나 인게이지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편 기업은 공급망상의 인권 경영 수준이나 작업장 안전문제 등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올해 '에너지 경제성'이나 '안정성' 이슈가 부각된다고 하더라도 '에너지 전환'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지이다.
따라서 정부나 기업에서는 RE100 등 저탄소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노력과 인프라 마련에 나서고 이를 중장기 로드맵과 마일스톤 하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andrew.j@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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