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하며 내놓은 공언이었다. 비전의 요지는 간결하다.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로 올라서겠다는 것.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현주소는 어떨까. 실상은 이렇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고 반도체 매출은 인텔에 1위 자리를 내준 채 2위로 주저앉았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해 3분기 파운드리 점유율은 TSMC가 57.9%, 삼성전자는 12.4%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른 점유율 차이는 직전 분기보다 0.8%P 늘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는 지난해 반도체 매출이 인텔이 487억달러, 삼성전자가 399억달러를 차지하면서 인텔이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년 만에 인텔에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앞서 발표한 지난해 잠정 실적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연간 영업이익이 10조원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작년 1~3분기까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연이어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작년 4분기는 업황 개선 등으로 실적이 나아졌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지만 DS부문 임직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지난해 삼성전자 DS부문의 초과 이익성과급(OPI) 지급률은 0%였고 임원들은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
1위를 놓친 곳은 또 있다. 스마트폰 시장이다. IDC에 따르면 작년 애플의 출하량은 2억3460만대로 삼성전자(2억2660만대)를 앞서며 1위를 기록했다. 해당 조사에서 애플이 1위를 차지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삼성전자가 1위를 놓친 것은 13년 만이다.
M&A 부문 역시 사실상 시계가 멈춰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16년 등기이사로 경영 전면에 나섰고 이듬해 수조 원을 들인 '빅딜' 하만을 인수했다. 인수 후 실적 부진으로 미운 오리 취급받던 하만은 최근 호실적을 거두며 효자 계열사로 등극했다. 그러나 하만 이후 이런 굵직굵직한 인수합병은 없었다.
이 모든 일련의 일들이 삼성전자의 연이은 헛발질에 의한 결과물이었을까. 그렇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법 리스크는 그간 이 회장의 발목을 끊임없이 붙잡아왔고 운신의 폭을 좁혔다. 해외 출장마저도 쉽사리 나갈 수 없었다는 점에서다.
오는 26일이면 이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가 나온다. 부당 합병과 관련된 재판은 2021년 4월부터 시작됐고 재판이 열린 횟수만 106차례이다. 이 가운데 회장이 참석한 횟수는 95차례다. 거의 매주 1~2차례씩 법원에 출석해 왔다. 불참석했던 사유도 대통령 해외 순방 등 중요 일정 때문이었고 나머지는 직접 출석해 왔다.
앞선 2016년 국정농단 사태까지 감안하면 8년째 사법 리스크에 휩싸여왔던 셈이다. 이는 이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온전히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기간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선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경쟁력 제고와 미래를 위해 과감히 투자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해 선원들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총수 부재'에 가까웠던 시간은 쌓이고 쌓여 삼성전자에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이제는 삼성이 다시 날개를 달 수 있게 해줘야 할 때다.
뉴스웨이 정단비 기자
2234jung@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