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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한국형 기업 거버넌스의 현답을 기다리며

전문가 칼럼 류영재 류영재의 ESG 전망대

한국형 기업 거버넌스의 현답을 기다리며

등록 2024.01.22 11:00

수정 2024.01.23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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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기업 거버넌스의 현답을 기다리며 기사의 사진

기업 거버넌스란 무엇인가

그동안 국내에서 '기업지배구조'로 번역 사용되어 온 '기업 거버넌스(Corporate Governance)'란 무엇일까. 간단한 질문 같지만 절대 간단치 않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자는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메커니즘'이라고 답하곤 한다.

예컨대 이 의사결정 메커니즘에서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놓는다면, 그것은 '주주 자본주의' 거버넌스이고, 이해관계자·지구환경과 주주가치의 절충점을 모색한다면 'ESG 자본주의' 거버넌스이다. 여기서 기업 거버넌스 개선 자체는 경영의 목적이 아니라 기업 발전의 수단일 뿐이다. 거버넌스의 목적은 '기업을 장기적으로 번영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적 문화와 맥락에서, 어떠한 거버넌스가 한국 기업들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적실성 있고 바람직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할 때, 크게 세 가지 측면을 입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1) 어떠한 거버넌스가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보다 효율적 효과적일까. 이는 의사결정의 위계성 측면과도 궤를 같이한다. (2) 어떠한 거버넌스가 보다 독립적이며 전문적일까. 전문성이 없으면 독립적인 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우므로 양자는 동전의 양면이고, 이를 통해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균형 기능이 확보될 수 있다. (3) 어떠한 거버넌스가 보다 투명한 것일까. 투명성은 의사결정의 자기 규율 및 자기 점검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년간 국내 기업 거버넌스 논의를 살펴보면, 주로 (2)와 (3)의 측면에 초점을 맞춰 온 반면 (1)의 관점이 상대적으로 간과되었다. 그러나 기업 거버넌스의 핵심은 (1), 즉 기업 주요 의사결정 상에서 여하히 효율성과 효과성을 극대화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업은 의사결정을 '제때(right time)', '제대로(appropriate)' 못 내리면 망하거나 쇠하는 까닭이다. 망하거나 쇠하는 기업에서 아무리 (2)의 독립성, (3)의 투명성 논의를 외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제까지 국내에서는 기업 거버넌스의 핵심인 (1)의 '위계성(hierarchy)' 측면은 간과되고, (2)의 '책무성(accountability)' (3) 투명성(transparency)의 측면이 강조되었다.

그렇다 보니, 사외이사 제도, 감사위원 분리선임, 집중투표제, 각종 위원회 도입, 전자 주총 개최 등 기업 거버넌스의 다양한 형식적 장치들이 속속 도입되었지만 거버넌스의 실질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업의 생존, 경쟁력 강화, 경영 목표 달성이라는 보다 가시적이며 긴급한 아젠다에 구축(驅逐)당하거나 무력화되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형국이고, 오히려 위의 형식적 장치들은 거버넌스워싱(Governance Washing)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기업 거버넌스의 제도적 장치들은 선진화되었으나, 그 실질의 후진성 배경에는 한국과 한국 사람들의 의사결정 문화 및 양태가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 국가들의 그것과 크게 다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의 네 가지 특성

그렇다면 기업 거버넌스와 연관 지을 때 한국 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한국은 위계적 문화다. 따라서 한국 사람들은 어떤 조직이나 모임이든(심지어 교회도) 구심점이 없으면 배를 산으로 보낸다.

둘째, 한국 사람들은 어떤 수치나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타협 절충해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적어도 현재의 기성세대들은 그런 교육을 받아 오지 못했다. 한국의 여의도 국회의 싸움 장면들을 떠올려 보시라!

셋째, 한국의 '관계문화"를 꼽을 수 있다. 한국 대다수 사외이사는 지배주주나 경영진과 학연·지연 사회적 관계 등으로 직간접 친분을 맺고 있다. 특히 사외이사 후보가 되는 각 분야 전문가끼리는 대개 한 다리만 건너면 친한 친구다.

넷째, 어쩌면 이 점이 제일 중요할 수 있다. 즉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주주-대리인' 관점에서 기업 거버넌스와 기업 경영이 발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보면 계약적 거버넌스 관점에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계약적 거버넌스 관점은 대리인 이론가의 주장처럼 주주만이 경영위험을 지고 독점적인 잔여청구권(residual claims)을 갖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주주 외에도 채권자, 경영자, 종업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도 제한적이나마 실질적 잔여 청구권자로서 경영 위험을 부담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계약적 거버넌스 이론에 의하면 기업 거버넌스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며 계약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체결하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계약 메커니즘으로 이해한다.

어떠한 관점이 한국에 더욱 부합할까

"어떠한 관점이 한국 기업 및 자본주의 발전에보다 부합하며 한국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이끄는 데 더 효율적, 더 효과적일까"라는 질문은 내 오랜 문제의식이 아닐 수 없다.

돌아보면 필자의 관점은 경험의 확장에 따라 지난 20여년간 변화해 왔다. 증권사와 해외 운용사 근무 시절에는 이 문제를 주식을 사고파는 투자자 입장에서만 주로 바라보고 분석했다. '주주-대리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기업을 직접 경영하고 ESG 관련 일을 하면서,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를 바라보는 필자의 관점도 변했다. 즉 기업 거버넌스 이슈를 분석할 때 투자자 입장뿐만 아니라, 경영자 입장, 지배주주 입장, 특히 ESG 관점도 함께 갖게 되었다. 아울러 기업 거버넌스를 둘러싼 한국의 기업 역사와 문화, 다양한 맥락 등도 동시에 고려하게 되었다.

또한 기업 거버넌스 문제는 제도적 측면, 경제·경영학적 측면 재무적 관점뿐만 아니라 한국 사법 시스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관점 등 통섭적으로 조명해야 한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동일한 제도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 '사회 시스템 및 제도', '문화' '역사' 등이 다르면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 제도의 전제 조건들

보다 구체적으로 사외이사 제도를 예로 들어 보겠다. 우리나라의 사외이사 제도는 일반주주(소수주주) 이익 보호를 목적으로 미국의 독립이사(independent director) 제도에 비교분석을 하여 지난 외환위기 이후인 98년에 도입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제도는 국내에 도입된 지 25년이 지났지만 사실상 한국에서 형해화(形骸化)되었다. 오히려 대다수 기업들에게 이 제도는 이사회 운영에 있어서 의사결정의 지연, 오도, 이사회 관리비용 증대라는 역기능을 초래했다고 보여 진다. 또한 '소수주주 이익 보호' 기능을 발견하기 어렵고 대신 '사외이사 그들 이익 추구'로 오용되고 변질되었다. 실패한 것이다. 왜 일까?

일반적으로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그것의 전제 조건들을 국내에서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전제조건들을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자.

첫째 사외이사들이 그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지려면 회사 지배주주나 CEO 등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학연, 지연, 혈연, 각종 사회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형성된 '관계문화'가 씨줄 날줄처럼 엮여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워낙 좁은 사회인지라 한 다리만 건너면 친구고 지인들 아닌가. 특히 지인 찬스 등으로 사외이사 자리에 앉은 사람이 이사회 석상에서 '레드팀' 역할은커녕, 회사 결정(특히 중요사안의)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한 자기 소신껏 반대 의견을 얘기하는 사외이사들은 기업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존재하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사외이사 기회를 제한당하는 형국이다. 역설적으로 한국의 여러 회사에서 사외이사직을 끊임없이 맡고 있는 사람들은 학연 등 네트워크와 사회적 감각이 매우 뛰어나거나 'Say Yes'에 능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사외이사들은 또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기업경영의 현장 경험이나, 업의 전문성 등을 갖춘 사외이사 인재풀이 너무나 협소하다. 기실 기업을 직접 경영해 본 것과 기업을 연구하고 분석하거나 투자해 온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과 측면들이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대개의 사외이사 자리를 현장과 기업경영 경험이 부재한 교수들, 전직 고위공무원들, 율사들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또한 이들만의 카르텔이 존재하여 서로 사외이사 자리를 바터로 추천하고 밀어준다. 참고로 사외이사로 인한 연 평균 소득이 전체 소득의 반 이상을 차지하면 그것은 매우 의미 있는 소득이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사외이사들을 거수기로 둔갑시키거나 스포일드(spoiled)시킬 수 있다.

셋째 사외이사들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려 해당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고 지게 하는 사법 시스템이 존재하고 작동해야 한다. 기실 미국 대다수 사외이사는 죄수복을 상징하는 '오렌지 슈트'를 입을 수도 있다는 엄중한 책무 의식으로 이사회에 참여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회사나 주주 및 이해관계자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잘못된 의사결정에 가담해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거나 솜방망이 처벌 시스템만이 작동할 뿐이다.

넷째 앞서 언급했듯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에서 합리적 토론과 객관적 수치로 제시된 자료와 결과에 대해 승복하고 타협할 수 있는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자리 잡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교육을 받지 못한 까닭에 이러한 메커니즘이 거의 작동하지 못한다.

또한 마지막으로 제도적인 측면에서 합병 비율 시가 결정, 자사주 마법, 증거개시제도 부재 등의 제도적 개선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울러 자본시장 측면에서는 장기투자를 바탕으로 하는 우호적 행동주의 투자자 저변이 지속적으로 넓어져야 한다.

이제 글을 맺는다. 20여년 이상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해당 제도나 장치들은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근본적 개선책을 원점에서 찾아봐야 한다. 다만 개선책을 모색할 때는 두 발을 미국 등 해외 땅에 딛는 것이 아니라 한국 땅에 딛고 서서 봐야 한다. 아울러 통섭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업 거버넌스 연구자들, 투자자들, 기업인들, 다양한 전문가들의 집현(集賢), 즉 집단지성으로 한국형 기업 거버넌스의 현답(賢答)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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