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원 6명 중 5명 '금리인하' 의견···"고금리 명분없다"가계대출·집값도 안정세···'거시건전성 정책' 정부 역할 강조금리인하 여력은 충분···금융안정 지켜보며 속도조절 예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오전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p(포인트) 인하한 3.25%로 결정했다. 지난해 13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한은은 38개월 만에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단행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린 건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대로 낮아지고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 강화로 가계부채 증가세도 둔화돼서다. 한은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책목표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 확인된 만큼 고금리를 유지할 명분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금통위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물가상승률이 낮아지고 성장 전망의 불확실성은 높아졌다"며 "금융안정 측면에서는 가계부채 대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미 연준도 정책기조를 전환하면서 외환부문의 부담도 다소 완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 금통위원들은 기준금리를 소폭 인하하고 그 영향과 대내외 정책여건을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앞으로도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중립적 수준으로 점차 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은에 따르면 최근 석유류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6%에 그쳤다. 근원물가 상승률(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 역시 2.0%로 둔화됐고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율도 2.8%로 떨어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2%를 밑돌고 근원물가 상승률도 2% 내외의 안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지난 8월 9조2000억원을 기록했던 은행 가계대출 증가액도 큰 폭으로 둔화됐다.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 증가액은 5조7000억원으로, 한 달 만에 6조원 밑으로 내려왔다.
가계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담대는 전월 8조2000억원에서 6조2000억원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전세대출 증가액도 7000억원에서 1000억원 감소한 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내수 회복 지연으로 성장 전망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수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고금리 장기화로 내수 회복 속도는 아직 더딘 상황이다. 다만 물가안정과 대내외 통화긴축 완화를 바탕으로 체감경기는 점차 나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한은 금통위원 6명 가운데 5명이 금리인하 의견을 냈고, 장용성 위원은 동결 소수의견을 표명했다.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 방향성에 대해서는 익명의 금통위원 1명을 제외한 5명이 현 수준을 조건부로 유지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에서 금통위원들은 대내외 불확실성을 고려해 우선 금리를 소폭 인하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는게 이 총재의 설명이다. 이번 금리인하가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고 미 대선 결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살펴보면서 신중히 통화정책을 결정하겠다는 금통위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 총재는 "주담대는 2∼3개월 전에 있었던 주택 거래량에 따라서 결정되기 때문에 후행하는 면이 있다"며 "9월 아파트 거래량이 7월 대비 2분의 1 수준이고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률도 8월의 3분의 1 수준이라 의미 있는 진전이 있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이어 "주담대 증가세는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둔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금융안정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금리인하가 주택 거래량과 가격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봐야 하고, 당분간 거시건전성을 위한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이번 금리인하 이후에 금리가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을 고려해 결정을 내린만큼 '매파적 인하'로 해석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도 보면 긴축 종료가 아닌 "긴축 정도를 소폭 축소한다"는 표현을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이 총재는 금리인하로 금융안정에 대한 한은의 책무를 정부에게 떠넘긴 것 아니냐는 비판에 반박했다. 정부와 한은이 원활히 공조하며 거시건전성 정책이 결정되고 있고, 금리인하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금리인하기에 은행권이 대출금리를 인상하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전체 포트폴리오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부동산 대출을 관리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란 의견이다.
끝으로 이 총재는 향후 추가적인 금리인하의 최대 관건은 '물가상승률'이라고 강조했다. 물가상승률에 큰 변화가 없다면 가계부채와 주택 가격 추이, 성장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통화정책을 운영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 총재는 "현재는 중립금리 상한보다 실질금리가 높기 때문에 당분간 금리를 인하할 여력은 있다고 봐야할 것"이라며 "다만 금리인하 속도가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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