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수요 둔화에 해외로 눈 돌리는 은행들신흥시장 수익 확대·현지 금융사 협업 강화전문가 "저출산·고령화 리스크 분산 기대"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해 5대은행(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의 해외 종속기업 순이익 합계는 약 8324억 원으로 전년 대비 4.08% 증가했다. 다만 총 당기순이익(15조원) 대비 비중은 약 5.5% 수준이다.
이에 은행들은 내수 한계를 해외에서 돌파하겠다며 2030년까지 해외 순익 비중 25~30% 달성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기업대출은 리스크 관리에 불리해 글로벌 수익원 확대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신한은행은 해외법인 10곳 모두 흑자를 기록하며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였다. 해외 순이익은 전년 대비 18.6% 증가한 5721억원으로, 4대은행 중 유일하게 해외 순익 5000억원대를 달성했다.
신한은행은 베트남법인과 일본 SBJ은행의 견조한 실적에 더해 카자흐스탄법인이 1030억원의 당기순익을 올리며 성장을 견인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카자흐스탄이 기업들의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한 덕분에 현지 영업 중인 신한은행이 반사이익을 봤다는 평가다.
신한은행은 해외 신규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4월 인도 학자금대출 전문기업 크레딜라(Credilla) 지분 10%를 인수하며 첫 해외 지분투자에 나섰고 해당 투자에서 40억원의 지분법 이익도 거뒀다. 당시 정상혁 행장은 "인도 시장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며 "다양한 현지 기업과 협업해 경쟁력을 키워 '글로벌 1등 은행' 지위를 공고히 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신한은행은 올해 3대 핵심 전략방향 중 하나로 글로벌 시장 리더십 강화를 내걸고 있다. 앞으로도 베트남·일본 등 주력 해외시장 중심의 추가 성장과 신흥시장 개척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9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를 방문해 금융당국과 금융산업 발전계획 및 미래 성장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지점·지분 인수·제휴···은행 해외전략 3종 세트
하나은행도 지난해 해외사업에서 전년보다 15.2% 늘어난 13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지분투자 방식의 해외진출 전략으로 대규모 지분법 이익을 기록하는 등 성공적인 투자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하나은행은 2022년 국내 금융사 최초로 대만 타이베이에 지점을 연 데 이어 2023년에는 미국 현지법인 지점을 5곳에서 7곳으로 늘렸다. 지난해 3월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사무소를 개설하며 유럽 공략을 본격화했고, 인도와 폴란드에도 지점 형태 채널 신설을 추진 중이다.
하나은행은 현지 유력 금융사와의 협업을 통해 안정적 수익 확보에도 성공했다. 2019년 약 1조444억원을 들여 베트남 1위 국영은행 BIDV 지분 15%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하나은행은 베트남 중앙은행에 이은 BIDV의 2대주주다. 하나은행은 그룹 차원에서도 동남아를 핵심성장 축으로 설정하고 있다. 현지화 전략을 통해 2030년 그룹 수익 30%를 해외에서 창출한다는 목표다.
우리은행의 해외법인(11곳) 순이익은 전년 대비 7.8% 감소한 2100억원에 그쳤지만 올해 신시장 개척으로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국내은행 최초로 폴란드 바르샤바 지점을 개설해 영국 런던 지점·독일 프랑크푸르트 법인에 이은 유럽 '삼각 편대'를 완성했다. 동유럽 최대 경제국 폴란드에 국내은행 중 처음 지점을 설립한 만큼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우리은행은 베트남·인도네시아·캄보디아 등 동남아 3대 법인의 영업기반도 지속 강화할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해당국 최고 은행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현지 법인에 대한 자본 확충과 디지털뱅킹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도 신년사에서 "해외에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며 "해외 유관기관과 교류 확대 등을 통해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KB국민은행은 국내 위상과 달리 해외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8년 인수한 인도네시 아 KB부코핀은행에서 누적 1조5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고, 지난해에도 241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이에 따라 KB국민은행의 해외 이익 비중은 사실상 '제로'다.
KB국민은행은 올해 반드시 인니 법인을 흑자전환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현지 IT인프라를 혁신해 젊은 고객층을 끌어들이고, 예수금 증대와 수익개선을 동시에 노린다는 복안이다. 이와 함께 KB국민은행은 캄보디아 프라삭 마이크로파이낸스 등 기존 동남아 자회사들의 성장 지원과 미주·중국 등 거점의 수익 다변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거세지는 장기 포트폴리오 재편 압박···해외시장이 열쇠
시중은행뿐 아니라 핀테크 선두주자인 토스도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올해 첫 연간 흑자를 발판삼아 글로벌 진출을 선언했다. 이승건 토스 대표는 지난 2월 토스 앱 출시 1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5년 내 토스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 되도록 만들겠다"며 야심찬 목표를 밝혔다.
토스는 해외 송금, 잔액 조회, 혜택 서비스 등 국내에서 성공한 서비스 모델을 글로벌 시장에 접목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공략 시장으로는 유럽이 거론된다. 토스뱅크는 지난해 11월 리투아니아 중앙은행과 파트너십을 논의하고 지원 약속을 받는 등 유럽 진출의 물꼬를 텄다.
국내 금융권은 과거에도 간헐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해왔지만 지금처럼 전사적으로 글로벌 사업에 집중하는 못했다. 최근엔 저금리 기조와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국내 여신시장 성장 한계가 뚜렷해지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은행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MUFG, SMFG, 미즈호 등 일본 3대 은행지주회사들의 해외 대출 비중은 40%에 육박하고 있다. 반면 국내 은행들은 과도한 출혈경쟁과 미흡한 현지화 등으로 신시장 개척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급격한 저출생·고령화에 따라 2025년은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대출수요 축소 등으로 금융중개 기능이 위축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만큼 은행은 전행적 차원에서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해외진출 등 신시장 개척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령인구 비중이 낮은 국가에 대한 사업비중을 높여 전체 은행 포트폴리오의 고령화 리스크를 분산시켜야 한다"며 "최근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이머징 국가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전문 금융회사 형태로의 진출 등을 적극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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