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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주의 chronique

紅塵에 묻혀가는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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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은 기본을 배워야 한다." 2022년 8월 25일 자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에 실린 칼럼의 제목이다. 이와 더불어 거의 매일 보도되는 대통령 부인에 관한 기사들, 대통령의 국정운영 소식보다 그 부인에 관한 기사가 더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어떤 기본적인 것을 배우라는 것인지 칼럼 내용을 촘촘하게 들여다보니 그동안 필자가 안타까움을 가지고 "혐오적 권력, 은혜로운 권력, 자아도취적 권력"을 논하며 썼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 새삼스럽지 않았음에도 밀려오는 참담함은 어찌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면서 또한 정치적 동물이다. 따라서 한 가족의 일원에서 나아가 한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느 순간에라도 위계와 그에 따른 권력 문제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그런 까닭인지 인간은 저마다 민생을 챙기는 정치, 좋은 정치인을 내세우며 권력욕구 충족을 위해 나선다. 탄탈로스의 갈증과 다르지 않은 이 욕구가 영원히 해소되기 어렵다는 것을 몰라서 그러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아니다. 혹자는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르다는 위험한 나르시시즘에 젖어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한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포부를 가지고 정치를 수단 삼아 권력 행사를 하려는 정치적 동물(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좋은 정치, 권력을 '올바르고 은혜롭게' 행사하는 권력자를, 민생을 먼저 챙기며 국민만 보고 간다는 권력을 과연 얼마나 경험한 적이 있었고, 지금 여기서 만나고 있는가!

"권력이란 게 잡으면 우리가 안 시켜도 알아서(…)."라는 천박한 완장 수준의 권력이 선출된 현실에서 우리는 측은지심이라도 쥐어짜 "대통령은 처음이고, 그 부인 역시 '여사'라는 권력 행사는 해 본 적이 없어서(…)"라고 그저 이해해 주어야 하는지. 새 권력이 들어선 5월부터 이런저런 황당하고 참담하기 그지없는 일상은 오롯이 국민이 견뎌야 하는 몫이 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결코 연습하는 자리가 아니다. 더군다나 손바닥에 펜으로 '王'자를 썼다고 왕으로서의 지도력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조선 시대 성군들이 그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경연을 왜 했겠으며 불철주야 쉬지 않고 토론하고 논의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학문적 수양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 부족함을 넘어 바른 결정력과 판단력을 길러 민생을 보살피는 지도자가 될 것인지를 지속해서 반성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안 시켜도 알아서 '기는' 게 현실이 된 작금의 우리 사회가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 국민은 과연 얼마나 될까. 기본부터 배우라는 외국 기자의 시각이 그렇지 않다는 간접증거일 것이다. 그저 호기스럽게 어퍼컷 날리고 장밋빛 공약을 뿌리면서 선출된 대통령, 한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은 그저 전화 지시로, 진흙으로 범벅이 된 재난 현장에 번쩍이는 구두 신고 찾아가 홍보용 사진 찍고, 마트에 찾아가 초록색, 빨간색 사과에 대해 몇 마디 물어보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전 정권과 우리는 다른 정치,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겠다고 한 말이 무색하게 '핵관', '체리 따봉', '빌린 보석', 정말이지 가관의 연속이다. 하루하루 紅塵에 묻히고 있는 권력 같다.

마키아벨리의 권력에 대한 정의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권력 행사의 주체가 인간인 이상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이 '완전'하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평등하기는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권력을 잡게 해주면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좋은 정치의 권력은 갈라치기보다는 신뢰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이 우리 사회가 이전보다는 좀 더 나아지고 있다는 건강하고 낙관적 지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사회의 공공의 선의 시작은 말 그대로 모든 국민 간의 차별 없이 공정성, 형평성이 확보될 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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