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우리는 수많은 기술 중 일부만 기억한다. 그건 대체로 우리의 일상에 곧바로 적용될 신기술이거나 미디어에 의해서 회자되는 기술들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기술 1개가 있을 때 평범한 사람들은 모르고 각 분야의 전문가나 업계 종사자,투자자가 아니라면 도무지 이름도 알 수 없고 기술의 쓰임과 원리에 대해서 이해할 수조차 없는 기술이 수억 개가 있다. 사실 알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꾸만 신기술이 등장하는 것에 민감하게 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선별된 기술들이 '임팩트' 있는 이벤트의 형태로 우리에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기술 자체는 2007년 아이폰 출시 이전에도 존재했다.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 MP3는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한 범용기술이었다. 다만 그것들을 한 개의 장비에 통합하고, 그 통합을 위한 백엔드 인터페이스와 사용자용 프론트 엔드 인터페이스와 이 모든 것들을 구동할 수 있게 하는 운영체제를 매끈하게 설계해낸 것이 주효했다. 물론 그 역시도 엔지니어들의 관심사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감각'을 스티브 잡스가 대중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한 이벤트, 그리고 그 감각을 느껴보려고 온갖 얼리어댑터들이 덤벼든 것이 대중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신기술의 도입은 일자리를 사라지게 할까?" 21세기가 되어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제기되는 질문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일자리가 사라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총량 관점에서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의 숫자와 사라지게 할 일자리의 숫자를 견주어서 평가해야 할 때도 있다. 좀 더 면밀한 평가를 위해 사라지는 일자리와 생겨나는 일자리의 질에 대해서도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그런데 일자리의 소멸이라는 무시무시한 주장은 대체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일까? 대체로는 아닐 때가 많다. 예컨대 칼 프레이와 마이클 오스본이라는 경제학자들이2013년 '고용의 미래'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줄어들 일자리의 개수를 추산하고, 뒤이어서 다보스 포럼은 아예 2016년'일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제출하며 어정쩡한 숙련 노동은 사라질 것이라며 미래를 비관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두 경제학자가 언급했던 수치는 전혀 맞지 않았고, '일의 미래' 보고서는 고용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미래 고용에 필요한 자질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순화되어 새로운 버전을 냈다. 걱정해야 할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챗GPT를 사례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챗GPT의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이용하는 사람, 챗 GPT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 알지만 사용하지 않는 사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중 가장 일자리가 위태로운 사람은 누구일까? 사실 아예 챗GPT를 모르는 사람은 챗GPT의 산출물과 큰 상관이 없고 많은 경우 일자리를 챗GPT와 경합할 필요도 없다. 챗GPT의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또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더라도 기존의 기술에 대한 이해수준을 통해 적응할 수 있는 직군의 사람들이다. 예컨대 기술에 관심이 있는 대학교수들이 최근 몇 달간 챗GPT의 기능에 한 번 놀라서 여기저기 칼럼과 보고서와 논문을 쓰더니, 좀 지나서 그 원리를 이해했고, 이제는 그냥 하나의 '보조기술'로 여기기 시작했다. 챗GPT가 질문하면 대답을 하지만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고, 주어진 자료 안에서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답을 내려는 기술이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한 후부터 챗GPT 논의 자체를 하지 않는다. 챗GPT로 영어 문장을 좀 더 그럴듯하게 쓸 수 있겠지만, 어차피 지식을 창조하는 입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새롭고 고유한 창의적 연구자의 주장이라는 것을 알아챘기에 어딘가 시큰둥하다. 외려 걱정해야 할 사람들은 반복작업을 챗GPT에게 맡겨서 효율적인 작업을 해내고 있는 사무직일 경우가 많다. 번역가의 미래가 불안하다면 DeepL 같은 기계번역기를 활용해 많은 양의 단순번역을 '쳐내고' 있는 보조번역가들 이야기일 것이다. 구체성이 빠진 논의는 공허하다.
따라서 '일자리 소멸론'이라는 막연한 비관론이나 그에 대한 부정을 하거나 일자리 개수를 추정하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가능하다면 좀 더 면밀하게 신기술이 우리의 삶과 일에 어떤 영향을 끼쳐야 할지에 대해서 질적인 수준의 논의를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건 신기술이 할 수 없는 부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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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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