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에 접어들어 모든 금융업권의 부동산 PF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몇몇 외에는 자세한 내막을 알 길이 없어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키를 쥔 금융당국이 금융회사별 연체율을 비롯한 세부 수치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는 탓이다.
국회에 따르면 일부 국회의원은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측에 증권사 등의 부동산 PF 연체율을 포함한 세부 자료를 주문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국이 개별 기업의 자료를 외부에 유출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처럼 정부가 부동산 PF에 대해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정보를 오픈하는 게 자신들에게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으로 정치권은 해석하고 있다. 특정 금융사나 업권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빚으면서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것은 물론,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책 실패론'이 확산될까 노심초사하는 것처럼 비춰진다는 게 전반적인 시선이다.
실제 정부는 상황을 바로 잡기보다 잡음을 없애는 데 치중해왔다. 주요 지표가 상승하긴 했지만 과거의 위기 때보다 현저히 낮을 뿐 아니라 그 액수도 적어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달 부동산 PF 점검 회의 내용만 봐도 그렇다. 3월말 기준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이 2.01%로 2022년말의 1.19% 대비 0.82%p 상승했음에도 정부는 저축은행 사태 당시(2012년말)의 13.63%에 비해 낮아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진단을 내놨다. PF 대출 연체율이 15.88%(잔액 5조3000억원)에 이르는 증권업권을 놓고도 회사별 숫자는 가려둔 채 연체액이 자기자본(총 76조2000억원)의 1.1%에 불과하니 괜찮다고 선을 그었다.
문제는 여러 경로를 통해 서로 다른 정보가 쏟아지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시장에선 신용평가사 리포트를 근거로 26개 증권사의 PF 부동산 익스포저(위험 노출액)가 28조4000억원에 이른다는 지표가 돌면서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애초에 당국이 제시한 연체액(5조3000억원)의 6배에 이르는 수치인데, 기존 대출에 일종의 채무보증인 PF-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까지 포함시키면서 그 숫자가 커졌다.
여기에 금감원의 갑작스런 행보도 시장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폈다. 국내 증권사 최고리스크책임자(CRO)를 긴급 소집해 부동산 대출을 철저히 관리하라고 경고하면서다. 특히 금감원은 관리에 소홀한 증권사에 대해선 CEO 개별 면담을 실시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업계와 당국의 노력으로 PF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완화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시장엔 언제든 리스크가 표면화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었다. 그 책임을 개별 업체로 떠넘긴 것은 물론이다.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정부가 리스크를 숨기는 데 급급해 편향된 시그널을 보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흘러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전국 곳곳의 건설 사업장이 무너지는 현 시점에 금융사의 위험을 분석하려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우발채무를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어쩌면 부채의식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정부로서도 건설업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투자·대출 규제를 풀고 상대적으로 재무 상태가 양호한 금융사에 지원을 강요했으니 말이다. 이제 와서 부동산 PF를 문제 삼는 것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격 아니겠는가. 아직 건설 사업장별 손실이 확정되지 않았고 금융사에도 충당금을 충분히 쌓도록 했으니 과도한 걱정을 삼가라는 당국의 주장도 아주 틀리진 않았다.
그렇다할지라도 이렇게까지 숨겨야 할 일인지 싶다. 정부가 금융사별 부동산 PF 취급 실태를 정확히 공개함으로써 현 주소를 정확히 진단하고 시장 참여자와 함께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연체율의 경우에도 업체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감지되는데, 지금처럼 덮어둔 채 시간을 끌었다간 파산이나 투자손실과 같은 더 큰 피해로 확산될 수 있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불신을 남긴 저축은행 사태의 교훈을 잊지 않길 바란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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