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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불나면 다 끝장' 전기차 포비아에 쫙 갈라진 요즘 아파트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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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면 다 끝장' 전기차 포비아에 쫙 갈라진 요즘 아파트 민심

등록 2024.08.23 10:35

수정 2024.08.23 10:55

이성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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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면 다 끝장' 전기차 포비아에 쫙 갈라진 요즘 아파트 민심 기사의 사진

'우리 아파트에도 전기차 많은데···'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아파트 민심 갈라치기의 원흉이 되고 있다. 지난 1일 인천 서구 청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지하 주차장 화재 사고의 여파다. 이번 사고의 파장이 큰 이유는 화재의 원인과 결과 둘 모두 상식 범위를 넘어선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해당 차량은 당시 충전 상태도 아닌, '그저 주차해뒀을 뿐'인데 발화했다. 정밀한 발화점 찾기는 진행 중이다. 19일 인천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3차 감식을 실시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예고 없는 불'이었음은 틀림없다.

총 87대가 불타고 793대가 그을림 피해를 보는 등 차량 한 대 화재 치고 피해가 극심했다는 점도 공포심의 원인이다. 지하를 관통하는 공공 시스템 마비로 대규모 정전과 단수가 잇따랐고 입주민들은 이 무더위에 큰 불편을 겪었다. 영유아 포함 입주민 22명은 당시 연기까지 흡입했다.

차 한 대에 불이 났는데 수많은 이웃이 재산을 잃었고 목숨에 위협을 느꼈다. 공동주택에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포를 느낄 법하다.

'불나면 다 끝장' 전기차 포비아에 쫙 갈라진 요즘 아파트 민심 기사의 사진

그러다 보니 전기차의 지하 주차장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민원이 아파트마다 빗발치고 있다. 충전 시설 자체를 지상으로 올려달라는 주장도 뒤따른다. 졸지에 죄인 취급을 받게 된 전기차주들은 억울하다.

실제로 지하 주차 및 충전에 대한 전기차 보유자와 비보유자 간 의견은 극과 극을 달린다. 최근 컨슈머인사이트가 이에 관한 설문을 실시했는데 전기차 보유자는 지하 공간 주차와 충전에 대해 찬성이 각각 66%·59%, 비보유자는 유자는 반대가 67%·75%였다.(아래 그래프)

반면 보유자의 '반대', 비보유자의 '찬성'은 모두 10%대에 머물렀다.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전기차 지하 주차장 이용 이슈. 언제 터질지 모를, 아파트 주민 갈등의 뇌관이 된 건 명백해 보인다.

'불나면 다 끝장' 전기차 포비아에 쫙 갈라진 요즘 아파트 민심 기사의 사진

이미 민원에 화답한 단지들도 있다. 사고가 난 청라 인근의 한 아파트에서는 전기차의 지하 주차장 출입을 금지키로 했다. 지하의 충전기를 모두 철거하고 지상에 충전 시설을 두겠다는 것. 당장 확정은 아니더라도 이 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친 공동주택도 많다.

지자체와 소방당국도 전기차 화재 피해 방지를 위해 분주하다. 서울시는 지난 9일 전기차 화재의 주요 이유 중 하나인 과도한 배터리 충전(100%)에 대한 방지책을 마련했다.

이를 위해 오는 9월 말까지 '공동주택 관리 규약 준칙'을 개정키로 했는데, 여기에는 전기차가 지하 주차장에 진입하려면 90% 이하로 충전돼 있어야 한다는 권고가 포함된다. 동시에 시내 공공시설에서는 당장 다음 달인 9월부터 충전율을 80%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소방재난본부도 시와 템포를 맞췄다. 9월 말까지 전기차 충전 시설이 설치된 공동주택 약 400곳을 대상으로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 관리 상태와 개선 사항을 점검한다. 서울이 이렇게 앞장선 이상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불나면 다 끝장' 전기차 포비아에 쫙 갈라진 요즘 아파트 민심 기사의 사진

하지만 전기차 실타래는 그렇게 간단하게 풀리지 않는다. 우선 지하 주차장 이용제한 자체가 현실적으로 만만찮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제출받아 19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공동주택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 시설 20만6047개 중 17만 870개가 지하에 있다. 무려 82.9%다.

이걸 옮길 시공간적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최근 10년 내 분양된 아파트 대부분은 애초에 지상을 주차 공간으로 설계해두지 않았다. 충전 용량 제한은 전기차 화재를 예방하는 하나의 경로 차단책이 될 수는 있지만, 안전을 근본적으로 보장해주진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전기차 배터리는 셀·모듈·팩 단위로 나뉘며 복잡한 구조를 띠는데, 부위별로 제조사가 다른 데다 화재 원인 규명도 쉽지 않다. 최소 100개 이상의 셀이 모듈을 구성하고 이 모듈들을 합친 게 바로 배터리 팩인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100개 셀 중 단 하나에 문제가 생겨도 열 폭주와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과충전을 삼가는 충전 습관도 중요하지만 배터리 자체에 불씨의 원인이 생겼다 하더라도 운전자가 미리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화재 위험성이 낮은 전고체 배터리가 등장했지만 아직 상용화(최소 2026년)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기도 했다.

'불나면 다 끝장' 전기차 포비아에 쫙 갈라진 요즘 아파트 민심 기사의 사진

지하 주차 전면 금지 등이 전기차주의 기본권과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법조계 의견도 있다. 낙인과 금지에 앞서 안전한 배터리, 전기차 화재 진압 시스템 마련,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과 관리자에 대한 신뢰 가능한 체계 구축이 먼저인 것이다.

'어떤 종류의 차를 타는지'로 인한 이웃 간 분쟁은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공동주택에서의 전기차 화재 공포를 괴담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불타는 전기차는 우리 주변에 언제 출몰할 지 모를 '잠재된 실존'이기 때문이다. 현시점에 필요한 조치는 진행되,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관계자 모두가 몰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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