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이야기는 이렇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수소전기차를 해보자고 했을 때 어떻게 하면 소비자와 접점을 늘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제품 특성상 자동차가 소비자에게 인도되면 서비스센터 방문을 제외하고 기업과 소비자 만남 기회는 별로 없다.
그런데 주유소는 다르다. 기름을 넣기 위해 소비자가 자주 찾는다. 주유소는 가만있어도 소비자가 스스로 방문하니 그야말로 최대의 접점이다. 관련해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차도 주유소처럼 소비자들이 매일 찾는 접점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수소전기차 개발에 뛰어들면서 현대차가 직접 수소스테이션을 구축하게 된 배경이다. 자동차 제조사가 에너지를 손에 쥐어야 지속성이 유지된다는 점을 오래전에 이미 구상했던 셈이다.
실제 이동 수단은 언제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동력발생장치는 연료를 태워 힘을 얻는 내연기관이고, 작동을 위해 화석연료를 넣어주는 주유소는 에너지기업의 전유물이다. 하지만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여러 문제가 발생하면서 수송 에너지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런데 수송 에너지 전환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대표적으로 수소의 경우 제조 방법부터 소비자가 쉽게 사용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모든 과정이 처음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 비용이 높아 아무나 진입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자동차 제조사가 에너지사업, 특히 수소에 뛰어든 것은 에너지를 손에 쥐기 위해서다. 수소의 '생산-저장-유통-사용'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집도하려는 의도다. 그래야 제조업의 지속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몇해 전 일본 토요타를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대화를 나눴다. 왜 수소에 진심인가를 물었을 때 토요타는 기업의 장기적 미래 때문이라고 답했다. 토요타의 미래를 대비할 때 에너지는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수소'임을 감추지 않는다. 더불어 올해 초 미국의 대형 유전개발기업 관계자가 들려준 얘기도 잊지 못한다. 현재 진행 중인 유전 외에 더 이상 새로운 유전의 발굴을 이미 중단했으며 그 대신 미래 수송 에너지로 수소를 주목했다고 한다. 그들이 제조사를 만난 이유도 매우 직접적이다. 수소 전기차가 팔리는 곳에 스테이션, 즉 접점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동 수단을 제조하는 기업도 인프라 확대에는 진심이다. 그래야 수송 부문의 에너지 유통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화석연료 주유소를 기반으로 SK가 성장했다면 현대차는 수소로 주유소를 몰아내려 한다. 자동차 전시장을 찾는 소비자가 점차 줄어든다면 고객과의 접점 확대 시설로 수소 충전스테이션을 삼으려 한다.
일찌감치 현대차가 수소 전기차 개발에 나선 것도 수소 사용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최근 공개한 이니시움 수소 전기차 컨셉트도 그 일환이다. 동시에 선박, UAM 등 움직이는 모든 이동 수단에 수소를 결합시키려 한다. 자동차 제조사로서 현대차 외에 에너지기업의 현대차를 추가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소 사회를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다. 에너지를 바꾸는 것은 사회 전반의 산업 전환을 의미하고, 특정 기업이 나선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그래서 공동 전선이 필요하고 현대차는 토요타와 손을 잡았다. 현대차와 토요타 모두 미래에는 수소 에너지 기업이 되자는 일종의 약속이다.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면 이동 수단 제조 및 판매 경쟁 격화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동 수단이 아니라 이동에 필요한 동력원이니 말이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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