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용 'TC 본더' 공급 이원화 갈등 지속'강경 대응' 한미반도체, 기업설명회도 연기 투자자들은 양측 대변하는 논리로 '설전' 중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는 이날로 잡았던 기업설명회를 연기하기로 했다. 당초 국내외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경영현황과 중장기 전망을 공유할 예정이었는데, 그 일정을 1분기 실적 발표일(5월15일) 이후로 미뤘다는 전언이다.
여기엔 SK하이닉스와의 불편한 관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적과 경영 전망을 진단하는 자리임에도 관련 이슈로 질의가 쏟아지는 장면이 점쳐지는 만큼 일정을 조율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선 대규모 발주 스케줄을 고려한 것이란 관측도 있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4월말 최대 50대(1500억원 규모)의 'TC(열압착) 본더'를 주문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는데, 그 결과가 나와야 한미반도체 측으로서도 대응 방향을 명확히 정할 수 있지 않겠냐는 진단에서다.
그만큼 양사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을 TC 본더 공급사로 추가함에 따라 한미반도체의 독점 구도가 깨진 게 불씨가 됐다.
이에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제품 가격 28% 인상을 통보하고 이천공장 HBM(고대역폭메모리) 생산 현장에 파견한 CS(고객 서비스) 직원 수십명을 회사로 다시 불러들였다. 지난 8년간 제품 가격을 동결하고 이천에 직원을 보내 무료로 유지․보수 서비스도 제공했는데, 올해부터 제값을 받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두 회사의 줄다리기 속에 시장 분위기도 가열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두 진영 간 논쟁이 이어지면서다.
먼저 SK하이닉스 측을 지지하는 쪽은 한미반도체의 욕심이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생산 안정화를 목표로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인데,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이를 방해하려는 것처럼 비친다는 이유다. 실제 한미반도체는 글로벌 TC 본더 1위 기업이다. 선단 공정인 HBM3E 12단의 경우 90% 이상이 이 회사의 장비로 만들어진다. 그런 기업이 몽니를 부린다면 SK하이닉스로서도 HBM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미반도체가 SK하이닉스에만 제품을 공급하는 것도 아니다. 전세계 320개 기업과 거래하는데, 그 중엔 우리 반도체 기업의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라는 게 일각의 시선이다.
물론 그에 대한 반박도 존재한다. 한미반도체 역시 나름의 서운함이 있지 않았겠냐는 논리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머리를 맞댔고 지난 8년간 공급부터 유지·보수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했는데, 대기업의 등장으로 자신들이 밀려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격이어서다.
특히 '가격'이 양사의 관계가 어그러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란 해석도 존재한다.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에 지불하는 돈이 한미반도체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한화세미텍은 대당 약 35억원에 제품을 공급하는데, 한미반도체는 그간 25억원 수준에 납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의 갈등 국면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HBM과 TC 본더 시장 구조와 참여 기업의 생산능력을 감안했을 때 서로에 대안이 없기 때문에 곧 관계를 회복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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