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의 역할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만한 기업에 자금을 배분하는 것이다. 이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은 연구개발, 마케팅, 인사, 생산, 판매, 자산매입, 각종 조달, 배송, IT 등 다양한 기업 활동에 자금을 효율적 효과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적 경제적 효용과 더 나아가 국민경제에 기여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기업경영이란 자금을 어떻게, 어디에, 얼마나, 언제 배분하느냐의 선택 및 결정과정과 다름 아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은 교환, 거래, 소비, 노동력 제공, 투자를 통한 위험부담의 대가 등으로 기업 활동의 과실을 공유한다. 예컨대 종업원은 물리적 지적 노동력을 제공하고 급여를, 협력사는 납품의 대가로 대금을, 소비자는 매입의 대가로 제품이나 서비스 취득을, 주주는 자본제공 위험부담의 대가로 배당, 자사주 취득의 주주환원 및 투자수익을 획득한다.
따라서 ESG투자나 ESG경영에 대해 언급할 경우에도 위에서 언급했던 기업의 자금 배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기업이 보유한 자금은 기업경영의 목적, 전략과 경영 시계(time horizon) 등에 따라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자금 배치상 우선순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일 기업의 핵심경쟁력이 종업원의 지적 물리적 노동력이라 판단한다면 경영진은 조달된 자금을 이 부문에 우선 배치할 것이다. 만일 협력업체라면 공급사슬관리에 의미 있는 자원을 배분할 것이다. 소비자라고 판단한다면 마케팅 및 영업활동에 더욱 치중할 것이다. 만일 주주라면 자기자본이익률(ROE) 및 총주주환원율(TSR) 제고 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한편 다른 측면에서, 요즘처럼 초뷰카(VUCA) 시대의 변동성, 불확실성, 모호성, 복잡성에 대비하기 위해서 주주환원이나 투자보다 '자금 유보'에 역점을 둘 수도 있다. 따라서 경영 행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러한 '자금 배치의 예술(art)'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금 배분에서의 우선순위 문제를 바라볼 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주주 자본주의' 관점을 사용할 수 있다. 주주자본주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앞서 언급했듯 투자자(주주)와 이해관계자는 둘 다 회사에 대한 기여로 보상을 받지만, 투자자가 받는 보상은 불확실한 반면 이해관계자의 그것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집에 비유해 보자. 집주인이 집을 팔기 전에 집의 가치를 올리려고 집수리를 결정했다. 집주인은 건축업자에게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건축업자는 수리를 통해 매매가 상승에 기여한다. 그러나 매매가 상승은 집수리 이외에도 주택시장의 상황이나 집주인의 협상 및 광고 선전 능력이나 수단에도 좌우된다. 여기서 건축업자의 집수리 대가가 매매가에 연동된다면 건축업자는 상당한 위험을 지게 된다. 따라서 건축업자는 집 매매가와 무관하게 정해진 돈을 받고, 집주인이 모든 위험을 부담한다. 집주인은 주택시장에 불황이 오면 타격을 받고, 반대로 호황이 오면 이익을 얻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종업원들은 노동의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 만일 경기 침체가 닥치고 회사가 적자로 전환되더라도 그들이 기왕에 받은 급여는 회수되지 않는다. 하지만 투자자(주주)는 다른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지급된 급여, 보상, 계약금 등이 지급된 이후 최후순위로 수익을 챙길 기회를 얻는다. 경기 침체와 회사의 적자 상황에서도 종업원과 협력업체 등은 급여와 대금을 받지만, 주주들은 손해를 감수한다. 반면 경기가 호황일 때는 투자자도 집주인처럼 수익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이해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청구권'을 취하고, 투자자인 주주는 보다 더 '위험한 청구권'을 갖는다. 이것이 '주주자본주의' 관점의 수익 분배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현대 자본시장은 위의 명제를 뒤흔든다. 자본시장의 트레이딩 테크놀로지가 초고도 화하면서 상장기업의 경우 투자자인 주주들은 '최후적 청구권자'의 지위를 쉽게 벗어던질 수 있다. 그들은 근로계약이나 납품 계약을 맺고 있는 종업원이나 협력업체들보다 클릭 한 번의 빛의 속도로 주주 신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이른바 '월스트리트 룰(Wall Street Rule)'이다. 물론 운이 나쁘고 매매 순발력이 뒤떨어지는 투자자들은 예외일 수도 있다.
또한 영미의 경우에는 회사가 적자 상황 등에 처하면 종업원을 손쉽게 해고할 수 있다. 해고의 자유도가 매우 높아, 종업원은 적자 상황에도 불구하고 급여가 보장된다는 주장 역시 현실과 다르고 나라마다 다르다. 또한 한국의 상당수 협력업체는 원청과의 갑을 구조 하에서 다양한 형태의 불공정한 거래관계를 맺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청의 적자 비용을 대신 부담하거나 대금을 제때 못 받거나 느닷없이 거래관계 단절의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주주가 종업원이나 협력사 등 이해관계자들보다 더 큰 위험을 부담한다는 명제는 성립하기 어렵다.
한국형 주주환원 수준은?
최근 들어 행동주의 투자자나 기업 거버넌스 전문가들은 한국 상장기업의 주주환원율(배당과 자사주 매입)이 매우 낮기 때문에 더욱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한국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평균 주주환원율은 고작 29%에 불과함으로써 미국 91%,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68%), 신흥국(37%), 중국(32%)보다도 낮다. 동의한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최소한 신흥국 평균 이상으로 그 환원율을 제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주주환원율이 턱없이 낮을까. 여기에는 기업 측의 불순한 이유와 그들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혼재해 있다. 첫째 이유에는 불순한 동기가 깔려 있다. 기업은 지배주주들의 특권적 소비(perquisite consumption)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주주환원보다 사내유보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지배주주 지분율이 낮은 기업들일수록 특권적 소비 유인이 강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지배주주 지분율이 1%인 경우와 100%인 경우, 1%만 보유한 지배주주의 특권적 소비에 대한 비용 부담은 100분의 1로 낮아진다. 아울러 자금을 쌓아 놓으면 놓을수록 터널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배주주 이익을 위해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둘째, 한국경제의 불확실성 및 변동성에 대한 보험금 성격도 띤다. 한국은 제조업 위주의 추격형 경제이다 보니 예측하기 쉽지 않은 글로벌 선발 업체들의 변화, 글로벌 시장의 판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금 성격의 자금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부연하자면 후발 추격형의 장치 및 자본집약 중후장대 제조업에서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기술 및 경쟁 판도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를 불확실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의 극단적인 고용 경직성도 여기에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다. 매출은 변동적이나 인건비는 고정적인 상황에서 경영진의 내부 유보 유인을 만류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내기업들이 선진국 수준의 주주환원 정책을 세워 실행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요구된다. 첫째 상장기업들의 지배구조 투명성과 소수주주권 보호에 인식 수준을 제고함으로써 주가의 디스카운트 문제가 최대한 해소되어야 한다. 기업의 내재가치에 부합하는 주가가 형성되어야 자본시장을 매개로 주주환원과 자본조달의 선순환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경기 순환적(cyclical) 산업에서 혁신 주도형(innovation driven) 산업으로 탈바꿈해 나가야 한다. 이러할 때 산업의 경기 변동성이 낮아지고, 매출 추정의 불확실성이 최소화되며, 현금 흐름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셋째, 두 번째와 관련되어 있지만, 유형자산 투자 위주의 장치 집약적 제조업에서 무형자산 중심의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의 산업전환을 해 나가야 한다. 넷째, 인건비가 고정비가 아닌 보다 변동 비적 성격을 갖춰야 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과도한 고용 경직성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여기서 미국의 주주환원 사례를 생각해 보자. S&P500 기업은 2003년부터 2012까지 자사주 매입에 2조 4000억불을 썼다. 배당금까지 합치면 전체 순이익의 91%를 주주들에게 지급한 것이다. 최우량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애플의 예를 보자. 애플은 2018년부터 5년 동안 3666억 달러의 순이익을 시현했는데, 같은 기간 4585억 달러를 자사주 매입(3873억불)이나 배당에 썼다. 결과적으로 이익 규모보다 더 많은 돈을 주주환원에 썼으니 자기자본이 줄어들었다. 주주환원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일종의 자본파괴라고 할 수 있다.
자본 규모가 커지면 대체로 저효율의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미국의 초일류기업들은 앞서 애플처럼 자본을 파괴함으로써 자본의 효율을 높였다. ROE는 자본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지표인데,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눠서 산출된다. 따라서 이익이 늘거나, 자기자본이 줄거나, 둘 다 이면 ROE가 상승한다. 미국의 초우량기업들은 이익도 많이 늘어났지만, 자본을 줄임으로써 자본효율성을 극단적으로 높였다. 그렇다 보니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와 월스트리트(주식시장)의 괴리가 생겨났다. 하지만 국민경제의 후생 증진과 이해관계자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은 총량적 성장이지, 자본효율성이 아니다. 자본효율성은 대개 투자자인 주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간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인플레이션 방지법안(IRA)에 자사주 매입에 대한 규제가 들어간 이유이다. (김학균, '주주자본주의 과잉의 어떤 나라', 경향신문 참조)
필자는 주주환원율에도 과유불급의 원리가 성립한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 주주환원율 29%는 낮은 수준이다. 더 올려야 한다. 하지만 단기적 관점과 중장기적 시계 하에서 점진적으로 상향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개도국 평균 환원율 37%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앞서 제기했던 기업 지배구조 개선, 국내 산업구조의 고부가가치화, 과도한 고용 경직성 완화의 문제와 병행하되 한국 맥락에 맞는 적정 주주환원율 수준을 찾아야 한다. 한편 산업별 섹터별 발전 단계와 해당 업의 특성에 부합하는 주주환원 규모 및 그 비율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아울러 향후 전개될 ESG경영 및 탄소중립 대전환의 시기에 예상되는 추가적 대규모 자본투자 측면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이 충분히 고려된 한국형 주주환원 정책을 연구하고 이를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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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ljh@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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