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이뤄졌던 삼성전자의 인사다. 모두가 놀란 '깜짝 인사'였다. 그야말로 인사철인 연말도 아니었고 '예고된 인사'도 아니었다. 계열사 사장들도 몰랐다는 말이 전해졌을 정도였으니 그 무게감이 남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더구나 작년 말 인사를 결정한 지 약 6개월도 안 돼 이를 뒤집은 '원 포인트 인사'였다. 그러나 놀라움도 잠시, 시장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들로 바뀌었다.
과거 삼성을 두고 '관리의 삼성', '전략의 삼성'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체계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남다른 혜안과 추진력으로 리더십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요 근래의 삼성을 두고는 '위기'에 더 가깝다고 진단한다.
삼성전자는 AI 열풍이 불러온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큰손으로 불리는 엔비디아와의 거래 성사 소식을 아직 전하지 못한 데다 창업 이래 최초 노조 파업이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심지어 최근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퀄 테스트에 대한 각종 루머들이 떠돌았고 급기야 한 해외 언론에서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퀄 테스트에 실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삼성전자의 "HBM 테스트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즉각적인 반박 이후에야 잠잠해졌다.
안타까운 점은 더 이상 반도체 산업은 한 기업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반도체 산업은 국가 전략 산업이 됐다. 미국, 일본 등 선진 국가들이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앞다퉈 지원금을 써가며 기업들을 유치하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선전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텔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오는 5일 예정된 '인텔 인공지능(AI) 서밋' 방한 일정을 돌연 취소했다. 반면 그는 대만 타이베이 '컴퓨텍스 2024' 기조연설 일정은 그대로 진행했다. 인텔 측은 내부 사정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두 국가의 반도체 시장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지난 3월 GTC 2024에서 이같은 말을 한 적 있다. 황 CEO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첨단 메모리와 HBM을 생산 중인 국가"라며 "한국인들은 같은 곳에 살다 보니 삼성전자의 대단함을 모르는 거 같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한국이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데는 분명 반도체 산업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굴지의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덕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지금은 삼성전자의 '위기'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이 또한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발판이라고 의심치 않는다. 비록 삼성전자가 현재 HBM 경쟁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지만 오랜 기간 '메모리 최강자'를 지켜왔던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기 때 마다 조직의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킨 경영 노하우도 있다. 수장 교체라는 과감한 쇄신을 시도한 삼성전자가 위상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SK하이닉스와 함께 반도체 초강대국으로 국격을 높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뉴스웨이 정단비 기자
2234jung@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