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액 86조원으로 분기 역대 최대 실적 갱신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이끈 어닝서프라이즈경영진 사과문 뒤 1년 만에 이룬 도약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수장인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을 필두로 삼성전자 경영진들이 "송구하다"고 사과문을 남긴지 1년여가 경과한 후 얻은 성과다.
15일 삼성전자는 전날 이같은 올해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했으며 사업 부문별 세부실적은 이달 30일 확정실적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성적은 시장의 컨센서스를 훌쩍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다. 시장에서는 당초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10조원대로 예상했지만 이보다 2조원 이상을 더 거둔 것이다. 영업이익은 2022년 2분기 14조1000억원을 기록했던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깜짝 실적은 반도체 부문의 선전 덕이 컸다.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범용 메모리 수요 급증으로 인한 D램 업황 및 서버용 SSD 등 낸드 업황 개선이 주요했다. 증권가는 삼성전자 DS부문이 6조원 후반대에서 7조원대 영업이익을 거뒀을 것이라 추정한다. 사실상 삼성전자 전사 영업이익 절반 가량을 DS부문에서 책임진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DS부문이 직전 분기 4000억원 영업이익에 그쳤던 것을 비추어 보면 감개무량하다.
여기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호재가 연이어 들리고 있다. 실적에 당장 온기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수년간 적자를 기록했던 파운드리는 미국 테슬라, 애플 등 대형 고객사를 잡았고 든든한 우군인 AMD가 오픈AI에 AI 칩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최대 수혜자로 삼성전자가 꼽힌다.
흥미로운 부분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삼성전자 경영진이 이례적인 반성문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2024년 3분기 잠정실적 발표 직후인 작년 10월 8일 참고자료를 통해 전영현 부회장의 메시지를 공개했다.
전영현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늘 사랑해주시는 고객과 투자자, 그리고 임직원 여러분, 오늘 저희 삼성전자 경영진은 여러분께 먼저 송구하다는 말씀 올린다"며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다"고 사과했다.
그는 이어 "많은 분들께서 삼성의 위기를 말씀하신다"며 "이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저희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삼성은 늘 위기를 기회로 만든 도전과 혁신, 그리고 극복의 역사를 갖고 있다"며 "지금 저희가 처한 엄중한 상황도 꼭 재도약의 계기로 만들겠다"며 "위기극복을 위해 저희 경영진이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그중에서도 반도체 부문의 초격차를 잃었다는 내외부적 지적을 정면 돌파한 셈이다. 그는 또한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미래에 대한 준비, 조직 문화 재건 등을 통해 위기 극복을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역시 삼성전자의 위기설을 외면하지 않고 임직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이재용 회장은 올해 3월 세미나에서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위기 대처에 임할 것을 임원들에게 강조했다. 전날에는 잠정실적 발표 직후 임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성과연동 주식보상(PSU·Performance Stock Units)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임직원들을 북돋우기도 했다.
전영현 부회장은 '근원적 경쟁력 복원'이라는 다짐 이래 미운 오리로 전락했던 DS부문이 점차 백조로 거듭나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그는 내부 살림을 챙기는 데 집중했다.
일례로 전영현 부회장은 DS부문에 홍보 자제령까지 내렸다는 후문이다. 화려한 치장보다 결과물로 보여줘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삼성전자 DS부문에서 제품 홍보 등 보도자료를 마지막으로 낸 시점은 작년 11월이 마지막이었을 정도로 조용히 지내고 있다.
전영현 부회장은 과거 2017년 메모리사업부장을 지냈던 메모리 설계 전문가답게 메모리 제품들에 대해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삼성전자 DS부문이 반도체 슈퍼사이클에서 좀처럼 힘을 못썼던 핵심 이유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경우에도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HBM3E(HBM 5세대) 12단 제품의 리디자인을 추진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전영현 부회장이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HBM 초기 대응 실기 인정과 함께 HBM4 등 차세대 HBM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실체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삼성전자의 HBM3E 12단 엔비디아 승인이 임박했고 HBM4에 대한 샘플도 경쟁사 대비 가장 높은 성능(11Gbps)의 샘플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이 모든 위기 극복의 과정은 삼성전자 경영진이 이례적인 사과문을 올린 지 1년가량 지난 현재, 최대 매출액과 5개 분기 만에 10조원대 영업이익 회복이라는 성과로 드러났다는 풀이다.
이는 고(故)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외친 이른바 '신경영 선언' 때와도 닮아 있다. 고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강도 높은 선언을 했다. 1995년 불량률이 높았던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제품인 애니콜의 불량품을 회수해 화형식을 거행했던 사례도 여전히 회자된다. 그만큼 삼성전자 위기 극복을 위한 강인한 정신이 녹아 들어 있었다.
이같은 '신경영 선언'도 선언에 그치지 않고 성과물로 드러났다. 신경영 선언을 외칠 당시 1993년 삼성전자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8조1570억원, 1조3090억원이었고 이듬해인 1994년 매출액 11조5180억원, 영업이익 2조6080억원으로 뛰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삼성전자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28배로 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신경영 선언'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풀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희소식들이 연이어 들리고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메모리 시장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결국 HBM에서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정단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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