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절대적인 힘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정부 요청따라 지원···협조 이유만으로 죗값 ‘정경유착’ 꼬리표 반(反)기업 정서만 늘어나
2017년 재계는 ‘오너 부재 리스크’에 시달려야 했다. 총수가 경영 현장이 아닌 재판장에 등장하는 총수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 정도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 사건이 이어지며 그에 연루된 기업들이 줄줄이 재판을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 역사상 최초로 구속된 데다 1심에서 유죄를 받으면서 1년 내내 사무실을 비웠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국정농단에 연루된 것 뿐 아니라 경영비리 재판까지 받으며 이중고에 시달렸다.
문제는 총수들의 비위가 대기업이 한국 경제에 기여한 공(公) 전체를 부정하는 듯한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이는 반기업 정서로까지 확대되면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특히 정부의 요청에 따라 지원을 했다가 ‘정경유착’의 사례로 지목돼 총수들이 고초를 겪을 때도 있다.
지난 한해 재판을 치렀던 이 부회장과 신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재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재단 출연을 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단독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요청하는 바를 딱 잘라 거절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1988년에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국회에서는 ‘제5공화국 청문회’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는 6명의 기업인이 증인으로 불려 나왔다.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 고 최종현 당시 선경그룹(SK) 회장, 신격호 당시 롯데그룹 회장, 고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 구자경 당시 럭키금성그룹(LG) 회장, 고 조중훈 당시 한진그룹 회장 등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3년 버마 아웅산 폭발사고 유가족을 지원한다며 ‘일해재단’이라는 공익법인을 만들어 재벌들부터 600억 원에 달하는 기금을 지원받았다. 청문회에서 “왜 돈을 지원했나”, “얼마를 준 거냐”는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당시 정주영 회장은 “대통령이 달라고 해서 줬다. 그냥 달라는 대로 줘서 얼마인지도 모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2016년 12월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기업 총수 청문회에 참석했던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기업은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법으로 막아 달라”며 기업 잘못만 추궁하는 의원들을 향해 당당히 요청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정부와 기업은 ‘갑과을’의 관계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국회와 검찰, 경찰, 각종 인허가권을 쥔 정부의 힘 앞에 기업들은 한없이 작아진다는 뜻이다. 과거 정권을 돌이켜보면 협조적이지 않은 기업을 상대로 세무조사나 그룹 해체, 금융 지원 차단 등의 보복이 행해졌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치 권력에 휘둘릴 수 밖에 없으면서도 사법권의 죗값까지 치러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한국 경제 성장의 한 축을 맡아온 공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셈이다. 한국 경제가 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게 된 기업들은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나라의 최고 권력자 앞에서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총수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이 협력 관계가 돼야 하는데 여전히 보이지 않는 ‘갑을’관계가 존재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기업이 잘하고 있는 것보다 못하고 있는 점을 부각하면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기업이 악의 축으로 비춰지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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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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