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불확실성 해소에도 관세전쟁 확전에 원화 약세외국인 자금 이탈···배당 수요까지 겹쳐 상방 자극전문가 "무리한 개입 역효과···내수 살리기가 우선"
7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27.9원 오른 1462.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이후 1430원대까지 떨어졌던 원·달러 환율은 재차 1460원을 돌파했다.
원·달러 환율의 급등 배경으로는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및 글로벌 통상전쟁 격화가 첫 손에 꼽힌다. 미국 행정부는 5일부터 전 국가 대상 10% 기본관세를 부과했고, 9일부터는 국가별 상호관세를 본격 적용할 계획이다.
트럼프발 관세 충격···수출 환경 위축 우려
미국 행정부는 중국 34%, 일본 24%, 유럽연합(EU) 20%, 인도 26%, 한국 25% 등 60여개 국가에 상호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상호관세율 발효 전까지 협상할 시간이 촉박한 데다 국가별 보복관세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중국은 오는 10일부터 모든 미국산 제품에 대해 34%의 추가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트럼프는 중국이 보복조치에 대해 '악수'라고 평가하며 연준이 금리인하에 나설 타이밍이라고 압박했다.
미국과의 관세전쟁이 격화될수록 우리 기업들은 수입대금을 조기에 확보하거나 환율 불확실성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달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질 수 있다. 이 같은 방어적 달러 수요는 원·달러 환율 상방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iM증권은 'FX 브리프'를 내고 "예상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상호관세 시행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파장을 촉발했다"며 "중국 정부의 맞대응 수위에 따른 위안화 변동성 확대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주 환율 밴드는 1420~1490원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외국인 '팔자'에 블랙먼데이···원화 수급 불균형 심화
특히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 강화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도 확대되고 있다. 외국인 자금 유출은 원화 수급의 불균형으로 이어져 환율을 끌어올리는 직접적인 트리거로 작용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4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약 5조8000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는 2021년 8월 이후 최대 규모다. 공매도 재개, 고환율에 따른 환차손 우려, 정치 불확실성, 관세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또한 국내 주요 상장사들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4월은 환전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다. 배당금 지급에 필요한 달러 수요가 늘면서, 일시적으로라도 환율 상승을 자극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돼 있다.
원화가치 상승재료 실종···"외환보유고 소진은 안 돼"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선을 돌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화의 가치를 끌어올릴만한 재료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환율이 비교적 제한적인 구간에서 횡보했지만 최근엔 상방 압력이 더 커 보인다"며 "무역수지 악화, 내수 부진, 증시 약세, 금리 역전폭 확대 등 펀더멘털 요인이 모두 원화 약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국내 증시는 공매도 재개 이후 불안정한 흐름이 반복되면서 외국인 자금의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며 "주가가 약세를 지속할 경우 환율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8일 코스피 지수는 장중 한때 2,438.02까지 밀려나며 '블랙먼데이' 사태를 맞았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오전 9시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를 발동했다. 발동 시점 당시 코스피200선물지수는 전 거래일 종가 대비 17.10포인트(5.19%) 급락한 312.05였다.
한국은행은 시장 변동성 확대에 주시하고 있지만 당장 구체적인 개입 시그널은 없는 상태다. 위재현 NH선물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은 낮지만 급격한 쏠림에 대해선 구두 개입 가능성은 열어둬야 한다"고 내다봤다.
다만 전문가들은 환율이 1500원선에 근접하더라도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해선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은행이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정부는 실효성 있는 내수 부양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서지용 교수는 "미국과의 금리 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더 낮추게 되면 외국인 자금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고 환율은 더 자극받게 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1500원 돌파도 충분히 가능한 국면"이라고 짚었다.
또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 둔화와 관세 충격으로 경상수지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원화 약세는 불가피하다"며 "이런 국면에서 외환보유액을 적극 소진하는 방식은 대외신인도를 훼손할 수 있어 지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1500원 근접 시 당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지만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의 불안 심리를 키울 수 있다"면서 "현재는 기본적으로 시장 흐름을 지켜보되 필요할 경우 제한적인 스무딩 오퍼레이션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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