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자들은 그렇지 않나. “사랑은 변해도 우정은 영원히”를 외치며 술잔을 부딪치는 회기를 부리는. 중학교 시절 교무실에서 졸업장을 훔쳐 학교 뒷산에 꼭대기에 올라 기념사진 한 장을 남기던 세 남자, 20년 뒤 그 사진 속 인물들이 어떤 파국으로 갈라서게 될지 자신들은 알았을까. 아니 자신들을 갈라놓은 그것의 실체에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이 세 남자는 변치 않는 우정 속에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을까.
영화 ‘좋은 친구들’은 최근 쏟아지는 자극적인 영화의 홍수에 대항할 수 있는 진짜 묵직함이 담겨 있다. 소재의 임팩트와 폭력 및 노출 코드 등을 배제한 채 스토리의 무게감으로만 114분을 내달린다.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에 마지막까지 치고 나가는 스토리 동력의 탄성 역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두는 데 힘이 부치는 느낌도 적다.
영화는 필연적으로 사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세 친구의 관계를 물질적 기준의 상중하로 배치한다. 물질적으로 유복하지만 정당하지 못한 방식의 삶을 사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현태(지성),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하게 타락한 속물근성의 인철(주지훈), 이 세상이 현태와 인철 단 두 사람이라고만 믿는 순수한 청년 민수(이광수). 이렇게 세 사람은 세상이 정한 기준의 삶을 살고 있지만 우정만큼은 진짜 가족 이상처럼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 하지만 그 기준이 문제였다.
현태의 어머니는 보험회사 직원인 인철에게 보험사기를 의뢰하고, 인철은 현태와 민수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다. 결국 사건은 예상치 못한 결과로 달리게 되고 영화 포스터 속 메인 카피 ‘친구를 의심한 순간 지옥이 시작됐다’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20년 동안 세 사람을 하나의 띠로 묶어 둔 ‘우정’이란 이름은 이때부터 ‘의심’이란 다른 얼굴로 변하게 된다.
의심은 관계의 파국을 만들어 낸다. 현태는 인철과 민수에게 의지하지만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생긴다. 인철은 너무도 태연한 현태가 두렵고, 불안해하는 민수가 신경이 쓰인다. 민수는 현태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모든 것을 덮으려는 인철이 원망스러우면서 그가 안쓰럽다. 공통점은 하나다. 친구란 단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세 사람의 ‘우정’이 그 순간부터 점차 ‘적의’로 돌변하게 된다.
‘좋은 친구들’은 너무도 깊고 너무도 넓어서 그 크기를 가늠키 어려운 ‘우정’의 잔혹한 이면이 어떤 파멸을 초래하게 되는지 너무도 잔인하게 그린다. 그 속도가 묵직해서 치고 나가는 맛은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살벌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서서히 서로를 옥죄어 가는 세 사람의 관계도는 문자 그대로 ‘지옥도’의 그것이나 다름없다.
민수가 두 친구에게 남긴 마지막 물건, 인철이 현태에게 남긴 또 다른 물건, 그리고 현태가 나지막하게 전한 대사 한 마디는 세 인물이 어떤 고통을 받았고, 결국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전하기에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
사실 ‘좋은 친구들’은 아주 단순하다. 사소한 오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파국의 결말을 말하는 데, 그 안에 담긴 메인 코드가 ‘우정’이란 단어이기에 더욱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믿고 있던 친구의 비밀을 알게 된 당신이라면 대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 속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에 담긴 세 사람의 종국(終局)이 관객들이 취할 수 있는 대답의 세 가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좋은 친구들’은 너무도 잔혹하고 슬프고 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이렇게 결코 가볍지 않은 또 너무도 무거운 얘기를 풀어간 세 배우 지성 주지훈 이광수의 연기는 유행처럼 남발되는 ‘재발견’이란 말을 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지성은 시종일관 친구들을 의심하는 감정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은 채 끝까지 고뇌의 커튼으로 가리고 자신을 끌어간다. 주지훈은 천편일률적인 ‘껄렁함’의 캐릭터에 감정이란 소스를 얹어 새로움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좋은 친구들’의 ‘신의 한 수’를 꼽자면 단연코 이광수다. ‘런닝맨’의 코믹한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완벽한 오판이다. 그는 죄책감과 죄의식에 사로잡힌 히스테릭한 캐릭터를 감정의 결 세포 하나까지도 건드리는 세밀함으로 관객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것이다. 연출을 맡은 이도윤 감독 역시 이광수에 대해 “천재”라고 단언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최근 한국영화계에 등장하는 주류는 속도다. 하지만 신인 이도윤 감독은 이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무게로 승부했다.
‘좋은 친구들’, 가장 가깝지만 또 가장 멀 수밖에 없는 ‘관계’에 대한 잔인함의 다른 말처럼 느껴진다. 개봉은 오는 10일.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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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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