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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새롬기술 6개월간 150배, 버블의 추억

[코스닥 1000시대 임박]‘그땐 그랬지’···새롬기술 6개월간 150배, 버블의 추억

등록 2020.12.22 08:31

김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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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 2834P까지 상승했던 코스닥, 버블 정점벤처 바람 시초 ‘골드뱅크’,‘새롬기술’ 주도주 등극삼성도 구애, 현대차 시총 넘어서다가 결국 붕괴

‘그땐 그랬지’···새롬기술 6개월간 150배, 버블의 추억 기사의 사진

‘새 천년(뉴 밀레니엄, new millennium)’을 앞둔 1990년대 말 글로벌 주식시장은 첨단기술이 이끌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당시 IT 벤처기업의 집합체인 미국 나스닥지수는 1300선을 돌파(1996년 12월 5일)하며 파죽지세로 올랐는데 이를 두고 앨런 그린스펀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고 표현했다.

나스닥의 비이성적 낙관론은 전 세계로 전염병처럼 번져나갔고, 마침내 한국에서조차 놀라운 광경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1996년 출범한 코스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약 4년 후인 2000년 3월 10일에 역사적 사상 최고가(2834.40)을 찍게 된다.

◇벤처업계 선두주자 골드뱅크, 주가 한때 31만원에서 1400원대로 = 출발은 한 인터넷광고 벤처업체의 폭발적인 주가 상승이었다. 1998년 코스닥에 상장한 ‘골드뱅크커뮤니케이션즈(골드뱅크)’란 회사가 그 주인공이다.

골드뱅크는 1997년 인포뱅크라는 이름으로 설립돼 같은 해 4월 골드뱅크로 바꿨고, 다음해인 1998년 10월 코스닥시장에 등장했다. 인터넷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사이버 머니’로 바람을 일으키며 한때 벤처업계 선두주자로 꼽혔다. 당시로써는 독특한 사업모델이었고, 이는 곧 투자자들의 시선을 끄는데 성공했다.

이를 반영하듯 그해 2월 초까지 골드뱅크는 15일 연속 상한가를 달리기도 했다. 주가가 연일 치솟아 그해 12월 9천원대에서 이듬해 2월 6만원대, 5월 중순에는 31만2천원까지 올랐다. 원래 시초 가격이 800원에 불과했던 골드뱅크는 31만원대까지, 8개월 만에 무려 3700% 이상 주가가 급등한 셈이었다. 당시 닷컴 열풍 속에서 큰 수익을 낼 것이라는 기대가 퍼지면서 ‘묻지마 투자’가 몰려든 것이다.

그러나 기대만큼의 실적을 내지 못한데다 창업자인 김진호 사장은 주가조작 시비에 휘말리자, 골드뱅크는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당시 국감에선 여야 의원이 “주가가 상장 후 1년 만에 50배까지 뛰어오르도록 조작한 배후를 밝혀내라”며 금융감독위원회를 몰아붙이는 촌극이 벌어졌다.

김진호 사장이 주가조작 시비에 휘말리자 골드뱅크의 사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골드뱅크는 자회사를 잇따라 처분했고, 텐더(비공개입찰방식 상품판매업) 사업진출을 통해 업종전환을 꾀하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골드뱅크 주가는 1400원대까지 붕괴되기도 했다. 결국 창업자 김진호씨는 2000년 4월 골드뱅크를 떠나게 됐고, 골드뱅크는 상장 11년 만인 2009년에 쓸쓸히 증시에서 퇴출당한게 된다. 블루멈으로 사명까지 바꿨던 골드뱅크에 대해 당시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사유로 2회 연속 50% 이상 자본잠식 발생과 반기보고서에 대한 감사인 ‘의견거절’ 등을 들었다.

◇삼성까지 무릎 꿇게 한 새롬기술, 결국 분식회계 혐의로 몰락 = 골드뱅크 논란으로 벤처기업 붐 열기가 식나 했더니, 이번에는 새롬기술(현 솔본)이라는 회사가 등장하면서 수많은 투자자들은 또다시 코스닥의 ‘달콤한 맛’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993년에 설립된 새롬기술도 마찬가지로 정보통신(IT)기업으로 1999년 8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무료 인터넷 전화’ 사업을 내세운 새롬기술은 1999년 8월 상장 6개월 만에 무려 150배 가까이 폭등해 단숨에 코스닥 황제주로 자리 잡았다. 이듬해 2월에는 시가총액이 약 3조원까지 불어나 현대자동차마저 눌렀다.

실제 1999년 10월만 해도 1890원이던 주가는 11월에는 3만원 그리고 12월에는 12만원으로 급등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0년 3월 초에는 28만2000원까지 치솟았다. 단순 주가 기준으로만 6개월 동안 150배 오른 것이다.

새롬기술은 1994년 팩스기기 없이 PC를 통해 팩스를 송부할 수 있는 통신소프트웨어‘ 팩스맨’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히트상품이 됐다. 그러나 새롬기술의 주가를 이토록 급등시킨 실질적인 재료는 팩스맨이 아니라‘ 무료 인터넷전화’였다. 미국 내 자회사인‘ 다이얼패드’가 미국의 전화회사인 GTE사와 협력해 인터넷으로 국내뿐 아니라 국제 전화까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발표한 것이 기폭제가 됐던 것이다.

당시 대기업들도 체면을 버리고 새롬기술에 구애에 나서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례로 2000년 1월 삼성그룹은 새롬기술과 계약을 맺었는데 당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새롬기술의 무료전화 서비스인 다이얼패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데 삼성이 협력한다’는 삼성 측 의무사항은 있었으나, 새롬기술 측의 의무는 없었다. 즉 당시 새롬기술은 ‘갑 중의 갑’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새롬기술의 영광도 오래가지 않았다. 과다한 증자에 따른 물량부담과 사업모델 부재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1999년 8월 2575원에서 2000년 2월 30만8000원까지 올랐던 주식은, 2000년 12월 5500원으로 급락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03년 7월 당시 새롬기술의 오상수 사장이 1999년에서 2000년 사이에 분식회계를 통해 225억원을 횡령한 혐의까지 드러나면서 새롬기술의 신화는 종지부를 찍었다.

◇버불 붕괴로 코스닥 ‘20년 침체’ 불렀지만···네이버 창업·엔씨소프트 상장 계기되기도 = 골드뱅크와 새롬기술로 ‘묻지마’ 투기장으로 변해가던 코스닥시장. 코스닥은 출범한 지 4년도 되지 않은채 2834선까지 찍게 된다. 20년이 지나서도 현재의 코스피지수(2777선)보다도 높은 수치다. 당시 '버블 닷컴'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당시 새롬기술 외에도 단기에 폭등한 코스닥 종목도 물론 있었다. 소프트웨어업체 ‘한글과컴퓨터’, 국내 최대 포털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수개월 만에 수십 배 오르는 주가 상승세에 동참했다. 이들 외에도 싸이버텍, 버추얼텍, 마크로젠,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 이지바이오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코스닥지수는 버블닷컴과 함께 2000년 2월7일 사상 최대폭(10.0%)으로 급등하며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피운 뒤, 다음 달부터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0년 4월 17일에는 11.4% 폭락하며 고통스러운 버블 붕괴의 ‘신호탄’을 쐈다. 미국의 나스닥도 2002년 1300선이 무너지면서 결국 ‘비이성적 과열’을 경고한 1996년 12월보다 낮은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코스닥지수는 결국 2000년 말 525로, 같은 해 3월의 사상 최고(2834) 대비 81.5% 떨어져 거래를 마감했다.

닷컴버블의 붕괴와 기업인의 각종 횡령·배임 이슈까지 겹치자 코스닥시장은 20년간 침체의 길을 걸었다. 2001년 다소 반등했던 코스닥지수는 2002년 말 다시 443까지 추락했다.

그래도 거품의 유산은 있었다. 닷컴버블의 광풍 속에서도 미래를 정조준한 IT 샛별들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일례로 삼성SDS 사내벤처로 1997년 출범한 검색서비스업체 ‘네이버’(1999년 6월 독립법인으로 새출발)와 1998년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이 이 때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 당시 ‘리니지’란 게임으로 관심을 모은 게임업체 ‘엔씨소프트’도 코스닥 상장 채비를 서둘렀고, 1998년 말 2000개 수준이던 벤처기업은 2001년 1만개를 돌파하기도 했다.

◇‘카카오·네이버’ 20년 만에 온 IT 전성기···“제 2의 버블닷컴?” = IT버블(닷컴버블) 붕괴 여파가 상당했던 탓일까. 이로 인해 벤처기업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벤처기업 대신 스타트업으로 아예 이름이 바뀌어버리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이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버블 붕괴 이후 당시 테마주들은 거의 대부분이 상장폐지 당하거나 이전보다 쪼그라든 상태다. 현재는 네이버와 카카오 정도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이 코로나 이후 비대면(언텍트)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주가가 급속도로 달리자, 과거 ‘IT버블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20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이 많다. 단순히 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다는 사실 만으로 닷컴버블과 지금을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기술주들의 현금흐름, 코로나19 환경, 풍부한 유동성 등 때문이다.

즉 과거 닷컴버블 시기에는 인터넷 관련 서비스라는 기대만으로 올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반면 현재는 구체화된 실적 전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코스피 시가총액 20년간의 순위 변화를 살펴보니, 과거와는 다르게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종목군에도 기술주(벤처기업)들이 자리를 줄줄이 차지하고 있었다. 즉 코로나 전후로 해서 최근의 국내 증시의 체질도 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한국경제 중추신경계 역할을 해왔던 제조업등이 시총 상위주에서 이름이 빠지고, IT·반도체와 같은 기술주가 급부상 중이다. 특히 네이버·카카오 등 IT 관련주의 성장세가 가팔라지면서 국내 증시가 미국 벤처기업의 요람인 ‘나스닥’처럼 변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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